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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가격통제가 스치고 간 자리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재임 시기에 유명한 정책이 시행된다. 그것은 지난 1970년 의회를 통과한 경제안정화 법안인데, 이 법안은 대통령에게 임금과 물가에 대한 통제권한을 주는 것이다. 닉슨 행정부는 물가가 상승하자 이 법률에 기초해서 90일간에 걸친 가격동결조처를 시행한다. 물가상승 시기에 정부가 가격통제의 유혹을 느끼는 것은 놀랍지 않다. 실제 역사에서는 이러한 가격통제의 사례를 여럿 찾아볼 수 있다. 단기 성과뿐 공급부족 시달려 예를 들어 프랑스는 18세기 혁명 이후 정부가 재정적자에 시달리자 새로운 화폐를 발행하며 정부부채를 갚았다. 그런데 신규 화폐발행에 따른 통화 공급 증가는 프랑스에 인플레이션을 가져왔다. 결국 물가상승에 따른 국민 불만에 시달린 프랑스는 곡물가격을 중심으로 가격통제를 실시했다. 그러나 문제는 물가상승은 궁극적으로 법률로 막을 수 없다는 점이다. 당시 혁명 이후 프랑스의 인플레이션은 실제로는 곡물 공급자 때문이 아니라 정부지출의 확대 속에서 프랑스 정부가 화폐를 많이 찍어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자 농산물은 시장에서 아예 사라졌다. 프랑스의 가격통제는 인플레이션 압력 속에 국민들의 삶을 곤경에 빠뜨렸다. 닉슨 대통령은 가격동결 조처에도 물가가 계속 상승하자 1973년 다시 60일간의 가격동결조처를 추가로 취한다. 특히 당시는 식료품 가격이 급등해서 수입농산물을 중심으로 가격을 동결한다. 그러나 결과는 미국 내 식료품 품귀 현상이다. 또한 국제적인 원유가격 상승 압력 속에서 정유사들의 가솔린 가격을 동결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그 결과도 역시 미국 내 석유품귀였다. 그렇다고 미국 물가가 안정되었는가? 그렇지 않다. 인플레이션은 치솟았다. 오히려 억지로 눌러 놓았던 용수철이 튕겨 나오듯 미국 물가는 이후에 강한 상승 압력을 받았고 국민들의 경제적 상황은 크게 악화된다. 이후 1980년대에 들어서야 미국 중앙은행이 통화 공급증가를 줄이고 금리를 정상화하면서 인플레이션도 잡을 수 있었다. 가격통제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게 해 인기를 끌 수도 있다.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물건값을 올리는 악덕 상인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이미지로 자신을 각색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격통제가 실시된 품목은 결국 공급부족에 시달린다. 가격상승 압력에도 불구하고 낮은 가격을 받도록 강요하면 공급자들은 그 가격에 물건을 내놓지 않는다. 그 결과 물건값은 더욱 올라가게 된다. 그렇다면 가격뿐 아니라 공급량까지 정해주면 어떨까. 가격과 수량 모두를 통제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회주의 경제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 물가상승에 고통 눈물만 남아 일반적으로 정책당국자가 명시적으로 가격통제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실상의 가격통제정책이 수행되는 경우는 많다. 다만 다른 이름으로 포장돼 있을 뿐이다. 때로는 공정거래정책의 이름으로, 어떤 경우는 부동산 정책의 명분으로 수행된다. 하지만 본질은 가격통제 정책인 경우이다. 특히 인플레이션 압력 속에서 물가상승의 본질적 원인인 이자율과 환율에 대한 논의를 제외하고 특정 산업분야를 거론하며 물가대책을 논의한다면 가격통제정책이 되기 쉽다. 그러나 가격통제정책으로 물가를 잡을 수는 없다. 가격통제정책이 스치고 간 자리에는 물가상승에 시달린 국민의 눈물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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