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철강 등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업종에 이어 중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는 부동산 개발 업계에서도 디폴트(채무불이행)가 현실화되면서 중국 금융 시스템에 대한 불안감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
17일 블룸버그와 중국 메이르징지신원 등에 따르면 저장성 펑화시에 위치한 싱룬부동산이 은행의 대출금을 갚지 못해 디폴트를 선언했다고 시 정부가 확인했다. 싱룬부동산의 부채규모는 총 35억위안(약 6,000억원)으로 채권자는 15개 은행 등이다. 이 중 중국 4대 국유은행 가운데 하나인 중국건설은행 펑화지점의 대출이 12억위안, 푸둥개발은행이 3억8,000만위안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메이르징은 "펑화시 당국이 디폴트로 인한 파장을 축소하기 위해 대응에 나섰다"며 "펑화시 정부가 싱룬부동산의 은행 부채 70%를 떠안고 나머지 30%를 은행이 대손처리하는 방식으로 사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싱룬부동산의 디폴트가 최근 부동산 경기 하락과 맞물려 부동산 개발 업체의 연쇄 부도로 이어지는 중국 부동산 거품 붕괴의 전주곡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장지웨이 노무라증권 중국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싱룬의 사례는 파산위기에 처한 중국의 부동산 업체 중 최대 규모로 파악된다"며 "부동산 시장의 급격한 조정은 중국이 올해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이라고 진단했다.
◇싱룬, 중국 부동산 부실 샘플=싱룬부동산의 디폴트는 중국 부동산 개발 업계의 거품과 부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부동산 개발과정인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서 고수익을 약속하고 무리하게 투자자금을 모집했지만 사업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불법대출 등으로 부실을 키웠다. 특히 PF를 통해 개발한 상가건물의 분양과 임대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또 다른 PF를 구성해 경영상황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지난 13일 인민일보는 싱룬부동산 관련자들이 지난해 11월과 올 1월 불법 자금모집과 불법 은행대출 혐의로 공안기관에 체포돼 조사가 진행 중이고 불법대출과 관련해 시기율위원회가 공무원과 은행 담당자들을 조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싱룬 외에도 부동산 개발 업체들은 지난해 4ㆍ4분기부터 중국 부동산 경기가 둔화되며 살얼음판 같은 위기상황을 보내고 있다. 최근 중국 항저우·창저우 등의 도시에서는 자금난에 직면한 부동산 기업들이 잇달아 분양가를 대폭 인하했고 중국 최대 부동산 기업인 완커는 베이징시 한 아파트 분양가를 1㎡당 3,000위안 인하했다.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1~2월 기준 전국 부동산 투자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3% 늘어난 7,956억위안을 기록했다. 하지만 증가율은 지난해 1~2월 21.8%를 기록한 후 둔화세를 이어가고 있다. 중국 부동산 경기도 본격적인 둔화세에 진입했다. 이날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2월 중국 70개 주요 도시 신규주택 가격이 전달 대비 상승한 도시는 57개로 전달의 62개보다 5곳 줄었고 신규주택 가격 증가율도 전달의 0.7%에서 0.54%로 둔화됐다.
◇부동산 거품 붕괴 시간문제=유령도시는 현재 중국의 부동산 시장이 처한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구이청(鬼城)이라고 불리는 유령도시는 개발업자가 시장 수요를 무시하고 건설을 강행해 발생한 미분양 아파트 단지로 창저우·어얼둬쓰·원저우·잉커우 등이 대표적이다. 올 들어서도 네이멍구·장쑤·허난·허베이·랴오닝·윈난 등에서도 개발된 12개의 신도시가 구이청으로 전락했다. 시장의 공급과 수요를 무시한 무분별한 개발 때문에 구이청은 급증했다. 특히 인구 100만~500만명 규모의 2~3선 도시에서 개발업자가 수요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싼값에 땅을 받아 지은 개발구는 중국 부동산 거품을 부추겼다. 노무라증권에 따르면 이미 중국의 1인당 부동산 면적이 30㎡를 넘어서 일본의 부동산 경기 붕괴 당시인 1988년을 추월했다며 부동산 개발의 붕괴는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또 중국의 국내총생산(GDP)대비 주택투자비율이 서브프라임 당시 미국이나 거품논란을 겪은 한국·일본보다도 높은 16%에 달하는 만큼 부동산 개발 업체들의 몰락은 중국 부동산 시장과 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예측했다.
◇금융·재정 시스템 위기로 확산 우려=중국 부동산 개발 업계의 부실은 리커창 총리가 가장 우려하는 금융 시스템 위기로 확산될 수 있다. 대다수 부동산 개발 업체들이 지방정부의 토지를 매입하며 토지를 담보로 은행에 대출을 발생시켜 개발을 진행하고 있어서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은행들이 부동산 관련 대출을 죄며 부동산 경기가 하락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부동산 개발 업체들이 디폴트가 현실화될 경우 그림자금융으로 부실을 전이시킨다는 점이다. 결국 얽히고설킨 부실의 실타래가 중국의 금융 시스템을 위기에 빠뜨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 개발에 따른 차익과 부동산세에 의존도가 높은 지방재정에도 경고등이 들어왔다. 토지를 팔아 부채의 원금과 이자를 갚던 지방정부가 부동산개발산업 붕괴로 더 이상 토지를 팔 수 없게 된다면 최악의 경우 지방정부의 디폴트도 발생할 수 있다. 여기에다 부동산 경기둔화로 전체 세원의 39%에 달하는 부동산세가 줄어든다는 점도 재정에 타격이다. 중국 정부가 올해 업무보고에서 영업세를 부가가치세로 전환하며 6대4 정도였던 중앙과 지방의 조세징수 비중을 5.5대4.5로 조정한 것도 부동산세 축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방재정을 지원하기 위한 조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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