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의 역습 그리드락, 마이클 헬러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br>특허권 걸려 신약개발 저해 사례등<br>각자 이권 주장 '그리드락' 개념 제시<br>"협력·규제로 경제 걸림돌 제거해야"
 | 복잡한 건축관련 서류로 인해 뉴욕시에는 건축허가 대행자들이 필요한 서류가 담긴 가방을 아침부터 줄지워 놓는다. 그리드락으로 소모되는 시간이 얼마나 낭비적인지를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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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의 라인강은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보호한 주요 무역 항로 중 하나였다. 상선들은 이곳을 통과하기위해 통행료를 지불했는데 13세기 제국이 약화되자 라인강변에 봉건귀족들의 성이 점점 늘어나면서 통행료를 불법으로 거둬들이기 시작했다. 이른바 '도둑귀족'들이 운영하는 요금소의 횡포가 갈수록 심각해지자 급기야 선박수송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지나친 불법 통행료로 라인강은 무역항로의 기능을 잃어버리게 됐으며, 독일 무역 쇠퇴의 원인은 물론 유럽 경제의 파이 자체가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졌다.
중세의 요금소와 같은 사례는 최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1980년대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전국을 734개 구역으로 나누고 휴대전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면허를 나눠줘 이들이 각자의 이권을 주장하는 바람에 미국 전역을 하나의 무선대역으로 묶을 수가 없게 됐다. 미국의 휴대폰의 통화 품질이 형편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적 소유권이 부를 창출한다는 게 정설처럼 여겨지고 있으나 지나치게 소유권을 주장하면 부는 점점 사라지고 모든 사람들이 손해를 입게 된다는 방증이다. 저자인 마이클 헬러 컬럼비아대 법대 교수는 경제학의 핵심 개념인 '소유권'을 중심으로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새로운 현상으로 '그리드락(gridlock)'을 제시했다. 그리드락이란 교차점에서 발생하는 교통정체라는 사전적인 의미 외에도 지나치게 많은 소유권이 경제 활동을 오히려 방해하고 새로운 부의 창출을 가로막는 현상을 의미한다. 지나친 특허권 방어막에 걸려 신약을 개발하지 못한다거나, 샘플 음악으로 새로운 노래를 짜깁기 하듯 만드는 콜라주 사운드 방식의 힙합음악은 철통 같은 저작권법에 걸려 창작활동의 발목을 잡히는 등 현대사회에는 수많은 그리드락이 있다.
세계를 금융패닉 상태에 빠뜨린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론 문제도 그리드락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은행과 채무자라는 단순한 관계였던 대출 문제를 현대의 금융공학은 파생상품이란 이름으로 다양한 담보증권을 만들어냈고, 결국 저당권을 부분적으로 소유한 사람들이 늘어났다. 저당권의 소유자가 난립하는 체계에서는 문제가 생긴 대출체계를 구조조정하기 위한 합의에 쉽게 도달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드락은 어떻게 줄여나가야 될까. 저자는 라인강의 요금소 문제에서 시사점을 찾는다. 라인강의 그리드락을 해결한 것은 협력과 규제였다. 1815년 빈 회의 이후 유럽 열강은 힘을 모아 부당 통행료를 징수하는 성을 파괴하기 시작했으며, 1800년대 중반 더 싸고 빠르며 안정적인 철도가 하천 수송을 대체하면서 라인강의 그리드락 문제는 사라졌다.
저자는 그리드락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한다. 그리드락의 발생을 모니터링하고 발생시에는 기존 법률을 조정하고 강제적인 수단까지 동원하라고 충고한다. "비록 그리드락은 시시각각 생겨나지만, 유럽열강이 라인강의 도둑귀족을 제거했던 것처럼 우리도 경제 성장을 방해하는 가상 요금소를 폐지할 수 있다. 올바른 수단을 사용하기만 한다면 시장을 만들고 혁신을 촉진하는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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