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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바보야'
입력2007-10-18 17:23:06
수정
2007.10.18 17:23:06
“당선이란 축하할 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축하는 당선자에게 할 것이 아니라 퇴임자에게 할 수 있어야 해요. 축하는 들어서는 자의 것이 아니라, 물러서는 자의 것이 돼야 한다 이 말이오.”
대선 바로 다음날인 2002년 12월20일 김수환 추기경은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당선 축하의 말을 보류했다.
누구나 당선되는 사람들은 축하 받을 말만 해 왔는데 여태까지 아무도 축하 받을 만한 짓을 해 온 사람이 없다는 안타까움의 표현이었다. 김 추기경은 이어 “5년 후에 노무현씨가 대통령직을 떠날 때 국민 모두가 더 좀 그 자리에 계셨으면 오죽이나 좋겠냐고 아쉬워하고 섭섭해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느덧 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두 달 뒤면 새로운 당선자가 등장하고 노 정권은 본격적인 정권이양에 들어간다.
노 당선자에 대한 지금의 평가는 그리 탐탁지 않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축하를 받으며 퇴임할 지 미지수다. 남북정상회담 후 지지율이 올라 30%를 넘어서고 있다는 여론조사도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60% 넘는 사람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돌이켜보면 이 정권은 국민들에게 너무 많은 선택을 강요했다. 탄핵문제서부터 대통령 임기 축소,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 그리고 최근의 북방한계선(NLL) 문제에 이르기까지. 먹고 살기 바쁘고 잘 알지도 못하는데 수없이 선택을 요구해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다.
경제 정책에 대한 평가 역시 성공을 논하기 두렵다. 반시장적 정책으로 국가경쟁력지수가 하락하고 양극화는 심화됐다. 그렇게 강조했던 부동산 정책도 여전히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김 추기경이 축하의 말을 보류하면서까지 간절히 소망했던 바람이 이번에도 이뤄질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이제는 새로운 정권의 문제다. 대선이 두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후보들마다 앞 다퉈 아름다운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던진다.
이명박 후보가 던진 비전은 7ㆍ4ㆍ7로 요약된다. 7% 성장에,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강국이다. 이를 위해 성장 중심의 전략을 펴겠다고 강조한다. 이에 반해 정동영 후보는 분배에 무게를 둔20대 80전략을 취하고 있다. 6%의 경제성장을 추구하면서 가진 20%보다 못 가진 80%를 위한 정책을 펴겠다는 것이다.
새로이 등장한 문국현 후보의 정책은 ‘부패 청산’과 ‘95% 행복론’이다. 500만개 일자리 창출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를 위해 근로자들의 1인당 평균 근로시간을 줄여 더 많은 사람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겠다는 주장이다.
이런 비전이 실제로 이뤄진다면 누가 되든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공수표가 되거나 헛된 신기루로 판결날 때 국민들이 받는 아픔과 선택에 대한 후회를 어떻게 책임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 후회는 지금까지 만으로도 충분하다.
과거는 그렇지 않았더라도 제대로 된 미래를 위해 이제 우리도 퇴임자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는 역사를 만들 때가 됐다. 되기까지 노력하는 것 이상으로, 축하 받으며 떠나겠다는 자세와 의지가 필요하다. 그것이 안되면 권좌에 올랐다는 기쁨보다 퇴임할 때 받는 무관심과 질책이 더 슬프고 아플 수 있다.
주룽지 중국 총리의 퇴임식을 미국 CNN방송까지 생중계하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물러날 때 그의 퇴임을 아쉬워하며 경제 성과와 개혁 업적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일본 언론의 사례를 우리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권경쟁에 나서면서 후보들마다 김 추기경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기길 바란다.
최근 김 추기경이 그린 ‘바보야’라는 제목의 자화상은 지금 이 사회에 던지는 또 하나의 무언의 메시지가 아닌지 생각하게 하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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