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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中·日 바둑 영웅전] 다른 길로 갔어야 했다

제11보(150~168)



원래 흔들기는 조훈현의 특기였다. 뭔가 흐름이 여의치 않다고 판단되면 조훈현은 질서 정연한 필연의 코스로부터 과감하게 손을 빼어 바둑을 종잡을 수 없는 무질서 속으로 몰고 갔다. 그리고 흔들리는 그 무질서 속에서 교묘하게 새 흐름을 끄집어내어 바둑을 역전시키곤 했다. 그의 흔들기에 일본과 중국의 날고 기는 고수들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조훈현의 흔들기를 목격하면서 자란 한국의 청소년 기사들은 누구나 흔들기에 뛰어난 기사가 되었다. 그러나 박영훈은 기질상 흔들기에는 그리 능한 기사가 아니었다. 그러한 그가 실전보의 백50으로 짐짓 흔들기를 도모했던 것인데…. “역시 흔들기 종목은 박영훈의 전공이 아니라는 게 드러났습니다.”(김성룡) 흔들기는 상대를 혼돈 속으로 몰고 가야 효능이 살아나는 법이다. 그런데 실전보의 백50은 전혀 그런 효과를 내지 못했다. 흑이 가장 평범하게 51, 53으로 대응하는 것이 좋은 수가 되고 말았으니까. 검토실의 청소년 고수들이 찾아낸 대안이 참고도1의 백1이었다. 흑2면 백3으로 변신한다. 장차 백은 A나 B를 기분 좋게 활용할 수 있다. 이 코스였으면 흑도 매우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실전보의 백50을 완착이었다거나 패착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 실전의 진행이 흑의 탄탄대로였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김성룡9단은 백62를 큰 완착이라고 지적했다. 참고도2의 백1 이하 9였으면 아직 백에게도 희망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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