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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워런 버핏과의 대화

26일(현지시간) 미국 맨해튼 53가에 위치한 셰러턴호텔 3층. 기자회견이 예정된 오후1시30분이 되자 로이터ㆍCNBCㆍ비즈니스위크ㆍ폭스뉴스ㆍCNN 등 세계 유수의 방송과 신문사 기자들의 취재 열기로 후끈한 실내에 긴장감이 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과 부인 멜린다 게이츠,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나란히 자리에 앉는다. 버핏 회장이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비롯해 5개 자선단체에 사상 최대 규모인 370억달러의 재산을 기부한 이유와 향후 계획을 설명하는 자리다. 버핏 회장의 기부금은 우리 돈으로 37조원에 달한다. 삼성전자의 연간 순익이 10조원을 오르내리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거의 4배에 육박하는 규모다. 또 한국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534개 전체 기업의 지난해 전체 순익 47조원의 80%에 해당하는 천문학적인 숫자다. 재산의 85%를 선뜻 내놓으면서도 버핏 회장은 1시간 동안 진행된 질의응답 내내 웃음과 미소를 잃지 않았다. 기자들의 질문에 농담과 해학을 섞어가며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며 자신을 낮췄다. 이날 그가 들려준 ‘기부철학’의 두개 대목이 귀에 들어왔다. 버핏 회장은 자식들이 아버지의 사회적인 지위를 그대로 물려받아서는 안되며 왕조적 부의 세습이 만들어져서도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부금 운용의 전문성도 중시했다. 그는 “나는 돈을 버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 하지만 돈을 쓰는 방법은 잘 모른다. 수년간 게이츠 재단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기부금 수탁자로서 제격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가 기부금의 대부분을 자식들의 재단이 아니라 게이츠 재단에 맡긴 이유다. 미국에서는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을 ‘기업 박애주의(Corporate Philanthropy)’로 표현한다. 게이츠 재단이 291억달러의 자선재단을 운영하고 있고 포드ㆍ로버트우드존슨ㆍ릴리ㆍ켈로그ㆍ휴렛ㆍ멜론ㆍ패커드ㆍ베티무어 등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 창업주와 사회단체들이 각각 50억달러 이상의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기업 이익을 사회에 내놓는 ‘사건’들이 간혹 나타난다. 하지만 모양새와 동기가 다르다. 기업 비자금 조사로 검찰 조사를 받는 도중에 기부금 카드를 꺼내놓으며 ‘깜짝 쇼’를 벌인다. 갖은 꾀를 부려가며 창업주 자손들의 경영권 승계를 시도하다 탈법과 불법 비판이 일면 돈을 내놓겠다고 호들갑을 떤다. 어떤 기업은 상속세를 제대로 낼 것이라고 언론에 발표하는 촌극이 벌어진다. 기자회견을 끝내고 퇴장하는 버핏 회장의 당당함 너머로 어떻게 해서든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한국 기업 경영자들의 안쓰러운 모습이 자꾸 오버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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