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반 총장은 뉴욕 맨해튼에서 '나는 기후변화 대응을 지지한다'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 영화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등과 함께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거리행진에 나섰다. 주최 측인 시민운동단체 아바즈에 따르면 뉴욕에서 31만명 등 전세계적으로 총 60만명에 참가해 역대 기후변화 시위 중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반 총장의 대중집회 참가는 극히 이례적인 일로 유엔 기후정상회의를 앞두고 각국 정부에 실질적인 행동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반 총장의 아이디어로 열리는 이번 뉴욕 회의는 내년 12월 파리 총회를 앞두고 주요국의 정치적 의지를 최대한 모으기 위한 자리다. 지난 2011년 말 194개국 대표단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기후 회의를 갖고 2020년 이후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신기후 체제를 만들기로 합의하고 내년 4월1일까지 협정 초안을 만든 뒤 파리 총회에서 협상을 끝내기로 했다.
이번 회의를 앞두고 각국 정부에 압력을 넣기 위한 시민단체나 과학자들의 측면지원도 활발하다. 국제과학자단체인 글로벌탄소프로젝트(GDP)는 이날 내셔널지오사이언스지에 게재한 보고서에서 올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전년보다 2.5% 증가한 370억톤에 달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중국의 경우 전년보다 4.5% 증가한 104억톤을 기록하며 미국(52억톤)과 유럽연합(34억톤)의 합계보다 많을 것으로 전망됐다. 해수면 상승으로 국가 존립을 위협 받는 마셜제도의 토니 데브룸 외무장관은 "뉴욕 정상회의는 파리 회의로 가는 길목에서 가장 중대한 외교적 순간"이라며 각국의 동참을 호소했다.
일부 성과도 나타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지금까지 독일만 10억달러의 출연 의사를 발표한 녹색기후기금(GIF)에 일부 국가가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노르웨이도 열대우림 파괴 방지를 위해 중남미에 3억달러의 자금 지원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아프리카 국가들도 풍력·태양열 등 재생에너지 개발을 통해 아프리카 삼림 파괴지역을 2020년까지 절반으로 줄인다는 계획을 내놓을 방침이다. 올 12월 유엔 기후대화의 의장국을 맡은 페루의 마누엘 풀가르 비달 환경부 장관은 "반 총장의 정상회의가 각국 간 물밑협상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이번 회의에서 미국·중국 등 주요 당사국이 큰 그림의 협상을 타결할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 '더반 회의'에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구별 없이 모든 국가가 온실가스 감축에 참여하되 국제적 의무보다는 자발적 방식을 도입하기로 합의했지만 구체적 방식을 놓고 이견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신흥국은 지구온난화는 역사적으로 선진국에 더 책임이 있다는 입장인 반면 선진국들은 전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3분의2를 차지하는 신흥국 참여 없이는 사태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당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불참하면서 정상회의가 시작도 하기 전에 김이 빠진 모양새다. 중국과 인도가 각각 세계 1위, 3위 온실가스 배출국인 만큼 집중 타깃이 되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다. 중국은 장가오리 상무부총리가 참석해 202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05년 대비 40~45% 감축하는 등의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지만 과거 대책의 재탕에 불과한 실정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역시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 감축 노력과 저개발국 지원을 강조할 예정이지만 구체적인 지원책은 내놓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NYT는 이날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이 내년 본격적인 협상을 앞두고 아직 카드를 숨겨놓고 있다"며 "협상안이 내년 봄까지는 윤곽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 정부의 기후정책 자문을 맡고 있는 싱크탱크 NCSC의 조우 지 부이사도 "유엔 정상회의는 정치적 이벤트에 불과하다"며 "중국 정부는 내년 상반기까지도 협상안을 확정하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