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US오픈이 열렸던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메리언 골프클럽 동코스 18번홀. 골프계의 영원한 전설 벤 호건은 티샷 후 223야드를 남겨두고 골프귀신도 다루기 어렵다는 아이언 1번을 빼 들고 두 번째 샷을 날렸다. 골프 역사에 길이 남을 '기적의 샷'순간이다. 호건은 마지막 홀에서 파 세이브에 성공하며 승부를 연장으로 몰고가 결국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호건의 1번 아이언은 US오픈을 주최하는 미국골프협회(USGA)박물관에 전시돼 있으며 메리언 골프장에는 기적의 샷을 기리는 현판이 설치돼 있다.
△13일부터 113회 US오픈이 열리는 메리언 골프장에는 호건의 현판과 함께 명물이 하나 더 있다. 핀 위치를 알리는 깃대(flagstick) 끝에는 깃발이 없다. 대신 버들가지로 만든 공모양의 광주리(위커 바스켓ㆍwicker basket)가 얹혀 있다. 피크닉 가방 같은 것이 홀 핀에 달렸으니 그 모양새가 여간 우스꽝스럽지 않다. 도난이 얼마나 많았는지 골프장 측은 해가 질 무렵 깃대를 거둬들인다. 특허도 등록돼 있다.
△위커 바스켓의 유래는 미스터리지만 적어도 골프장 측의 설명은 이렇다. 1910년 휴 윌슨이라는 클럽 회원이 코스설계 벤치마킹을 위해 영국과 스코틀랜드를 여행하다 착안했다고 한다. 우연한 기회에 목동이 들고 있는 양몰이 막대 끝에 도시락 광주리가 달린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것. 모방이라는 견해도 있다. 골프의 발생지 스코틀랜드에서는 진작부터 위커 바스켓을 사용했는데 강한 바람 탓에 깃발이 깃대에 감겨 핀 위치가 잘 보이질 않아 그런 요상한 홀 핀을 만든 거란다.
△어쨌든 희한한 모양의 깃대가 한세기 동안 유지됐다니 골프장 측의 고집도 참 대단하다.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선수의 직감과 경험으로 판단하라는 메리언의 까탈은 거리를 알려주는 말뚝이 없는 데서도 드러난다. 개미허리 페어웨이에 깊고 질긴 러프, 131곳에 도사린 벙커로 출전 선수들은 죽을 맛이겠지만 그린 위 빨간 광주리를 향해 흰색 골프 공이 포물선을 그리는 광경은 US오픈을 시청하는 데 색다른 묘미다. /권구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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