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얘기 들리세요?" "의사 표현을 정확히 하셔야만 공증이 가능합니다." (끄덕끄덕) "본인의 전재산을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하시겠습니까?" (끄덕끄덕) 죽음을 눈앞에 둔 한 할아버지가 자신의 전재산을 기부하기로 해 메마른 사회에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현재 서울 관악구 양지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손중기(70ㆍ사진) 할아버지는 말도 할 수 없는 상태이어서 고갯짓으로 재산 기증 의사를 표현했다. 16일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서울 관악구 성현동에 사는 손 할아버지는 지난 9일 자신의 전재산인 전세보증금 3,060만원과 통장에 있는 80만여원을 모금회에 기부하기로 했다.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기초생활수급자인 손 할아버지가 평생 아껴가며 모은 값진 돈이다. 어린 시절 혈혈단신 북한에서 건너온 손 할아버지는 1985년 가정을 꾸렸으나 10년 뒤 부인이 암으로 세상을 먼저 뜬 뒤 자녀도 없이 홀로 지내왔다. 폐 질환 및 고혈압, 당뇨 등으로 최근 1년간 입ㆍ퇴원을 반복한 손 할아버지는 8일 병원에서 위독하다는 진단을 받은 뒤 재산을 기부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평소 자신을 돌봐주던 동주민센터 직원에게 기부 의사를 전했고 9일 모금회의 '행복한 유산 캠페인'에 참여하게 됐다. 특히 이날은 공교롭게도 손 할아버지가 칠순을 맞는 날이어서 의미를 더했다. 정작 본인은 칠순 생일인 줄 모르고 있다가 공증 과정에서 이 사실을 안 모금회 직원이 축하의 말을 건네자 눈물을 흘렸다. 모금회의 한 관계자는 "손 할아버지처럼 홀로 지내시다 사망할 경우 전세보증금이 집주인이나 주변 이웃들에게 돌아가 고인의 뜻과 다르게 쓰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할아버지처럼 생전에 아름다운 약속을 실천하는 분들이 앞으로도 늘어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모금회의 '행복한 유산 캠페인'은 2004년 12월부터 모금회가 펼치고 있는 유산 기부 캠페인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약속'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