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지역의 한 문예회관은 2012년 연간 운영비로 161억원을 썼다. 같은 기간 대관이나 공연으로 벌어들인 돈은 1억원에 불과했다. 1년간 이 기관의 공연 일수는 39일에 그쳤고, 전시일수도 고작 7일이었다. 사정은 서울지역의 한 문예회관도 비슷하다. 1년간 15억원을 쓴 이곳의 공연일수는 51일. 같은 기간 벌어들인 공연 및 대관 수입은 900만원이었다.
지방은 물론 서울 일부 문예회관은 공연실적 및 수익 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다양한 이유가 존재하지만, 지자체 산하로 묶여 있다 보니 자율성은 물론 스스로 먹고 살 야생성을 모두 잃어버렸다는 지적이 많다.
◇문예회관 가면 좌천(?)=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전국 214개 문예회관 중 절반 이상인 112곳이 2000년 이후 들어섰다. 민선 지자체장들이 선거를 의식해 문예회관을 비롯한 문화·여가시설 공약을 남발하면서 중장기 재정투자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사업성 검토 없이 지역마다 우후죽순 건물을 세우거나 리모델링에 나선 것이다. 문제는 뚜렷한 비전 없이 선거의 산물이자 단체장의 파워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문예회관이 난립하면서 설립 후 운영이 부실하다는 데 있다. 문예회관을 이끌 수장이나 내부 직원들 중 전문가가 부족해 공연 기획은 물론 유치에 애를 먹고, 2~3년에 한번 씩 자리를 옮기는 공무원들의 특성상 특정 전문가를 키울 여건도 여의치 않다. 공연 유치는 물론 제대로 된 홍보조차 안 돼 지역주민들이 인근 문예회관에서 진행되는 공연프로그램을 잘 모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지방 문예회관 여러 곳을 거친 한 문화예술계 인사는 "어떤 곳은 문예회관으로 발령받는 것을 좌천으로 생각하더라"며 "이런 사람들은 문예회관에서 일을 하는 동안 어떻게 하면 원래 자리로 복귀할 수 있을지만 따질 뿐, 본 업무에는 소홀한 경우가 많다"고 털어놓았다.
이승엽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과 교수도 "전국 문예회관의 60% 이상이 지자체의 직접 관리 속에 소속 공무원들의 순환 근무로 운영되고 있고, 시설관리공단 위탁운영도 비슷한 형태"라며 "지자체와 소속 공무원의 경영 의지, 예산에 따라 부침이 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공연을 기획하고 뚜렷한 마인드로 예술 경영을 펼칠 전문가를 확보하지 못하는 한 지속적인 관리와 성장이 어려운 셈이다.
◇열악한 인프라=열악한 인프라도 문예회관이 겉도는 배경 중 하나다. 뮤지컬의 경우 '대작'이라고 불리는 작품들은 통상 1,000석 이상의 객석이 확보된 공연장을 주 무대로 삼는다. 전국 214개 문예회관의 공연장 341개 중 객석이 1,000석 이상인 곳은 48곳뿐이다. 여기에 주요 무대 설비와 지리적 접근성 등을 고려할 때 대형 뮤지컬이나 콘서트 등 공연이 설 수 있는 곳은 더욱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서울의 한 문예회관 대관 담당자는 "기획이든 대관이든 공연 하나를 무대에 올리려면 관객 규모부터 교통편의, 무대 시설 등 따져야 할 요건이 많다"며 "각종 조건을 따지다 보면 결국 서울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 블루스퀘어 등 6~7개 대형 공연장 중심으로 수요가 몰릴 수밖에 없고 지자체 문예회관은 당연히 초청 공연조차 어려운 벽에 부딪히게 된다"고 밝혔다. 소규모 전시회나 지자체 행사, 간헐적 문화 강좌를 유치하는 것 외에 공간을 활용할 방법이 딱히 없다는 것이다. 백선혜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설 자체가 공연을 올리기 어려운 현실을 두고 무조건 '공연을 올리라'고만 하는 건 해법이 되지 않는다"며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문예회관들은 공연이 아닌 지역 주민 문화 교육이나 콘텐츠 발굴의 장(場)으로서의 새 역할을 모색할 필요도 있다"고 조언했다.
◇정부·지자체 용돈에 의존=정부의 재정 지원 없이는 전기세조차 내기 어려운 현실도 문예회관의 자생력 키우기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전국 문예회관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답변을 한 208개 문예회관의 1년 수입 중 82.4%가 공공지원금이었다. 티켓 판매나 대관료 수입은 12.7%에 그쳤다. 자체 수익 창출 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기획공연이나 프로그램, 질 높은 해외 문화 콘텐츠 유치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지자체의 예산 감소가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고, 질 낮은 프로그램·홍보 마케팅의 부족·관객 및 방문객 감소라는 악순환을 불러오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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