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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풍경의 배반

이용웅 <경제부장>


바람이 얼굴을 스칠 때 조금은 상쾌해지는 계절이다. 도심 밖으로 나가면 따뜻하면서도 은근하게 서늘한 기운의 물 기운을 맛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바야흐로 ‘춘서’(春逝)의 시간이니 폭염을 두려워하는 자에게는 서운한 마음이 찾아 올 것도 같고…. 토닥거리는 빗줄기를 타고 오르는 흙냄새를 맡은 지 오래되는 사람들에게 계절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항상 낯설다. 시간의 행보를 모르니 풍경의 ‘변함’을 눈치채면서 살기가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풍경의 외양에 갇힌 경제성장 그렇게 봄을 보내고 여름을 맞이할 때 ‘맑은 강의 한 굽이 마을을 안아 흐르고, 긴 여름 강촌의 일마다 그윽한’(淸江一曲抱忖流, 長夏江村事事幽ㆍ두시언해) 그런 풍경 속에 묻히고 싶은 마음이 누군에겐들 없겠는가. 그 마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꼭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면. 그러나 앞의 한시를 지은 두보는 결코 풍경에만 넋을 빼앗기지 못한 것 같다. 두보는 그 다음에 이렇게 읊고 있었다. ‘많은 병에 얻고자 하는 것은 오직 약뿐이니, 이 천한 몸이 이것밖에 또 무엇을 구하리오’(多病所須唯藥物, 軀此外更何求) 많은 선비들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을 때 두보는 그속에 감춰진 팍팍한 삶을 웅변하는 중생들의 고름을 보았던 것이다. 풍경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것을 어찌 어리석음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 것인가. 어차피 사람들이 풍경을 자신의 마음속에 가둬놓기 좋아하는데 살기가 힘드니까, 또는 살기가 너무 즐거워서 주변의 풍경에 마음을 내맡기는 여유를 잃어버린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서설이 길어졌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결국 돈에 관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1ㆍ4분기 성장률이 2.7%에 머물렀다는 소식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만들고 있다. 불과 얼마 전에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 경제는 완전히 회복됐다”고 선언한 적이 있었다. 1ㆍ4분기 실적표가 발표된 뒤에도 지난주 말에는 이해찬 국무총리가 5%성장을 낙관하는 발언을 했다. 상반기 통틀어 3% 안팎의 성장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연 5% 성장률을 맞추려면 하반기에 7%라는 고도성장을 이룩해야 함에도 이 총리가 그렇게 될 것이라는 이유를 딱 부러지게 댄 것은 물론 아니다. 경제가 어렵다 보니 소득의 양극화도 심해졌다는 소식이다. 도시 근로자 가운데 잘사는 사람들의 소득이 못사는 사람의 5.87배에 달한다는 통계도 나왔다. 사상최대로 그 폭이 넓어졌다는 설명도 곁들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세계 10대 경제대국’ ‘세계 4위의 외환보유고’ ‘OECD 국가들 중 최고의 성장률’ 등등의 화려한 풍경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분배’를 강조해온 참여정부가 이처럼 풍경의 외양에 매혹되는 모습을 보는 기분이 영 개운치가 않다. 알고 보면 동북아 정세를 시끄럽게 만들고 있는 ‘균형자론’도 다 경제에 대한 자부심에서 나왔을 것이다. 경제가 좋아진다는 이야기는 별로 없는 가운데 국가재정의 장기계획에서 ‘경제’ 예산보다는 ‘복지’ 예산을 늘리겠다는 내용이 큰 틀을 차지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이제 우리도 서구식의 복지제도를 만들 때가 됐다는 만족감 탓일 것이다. 그러나 잠재성장률이 신통치가 않아서야 복지가 얼마나 지탱될지 자신하기 어렵다. 서민들 지갑만 자꾸 엷어져 최근 흘러나오고 있는 정부 통계를 보면 서민들의 지갑이 자꾸만 엷어지고 있다. 세금 낼 돈도 없어 허덕이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정부는 복지 예산의 증액으로 그것을 틀어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말이 좋아 분배지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경제가 어느 정도는 돌아가야지 한계생활에 내몰리는 극빈자도 구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의 화려한 외양이 보여주는 풍경에 속는 주체가 다름 아닌 분배를 강조해온 참여정부의 주역들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어색하다. ‘우리 경제의 위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주장은 정부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극한 상황에 내몰리는 서민들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경고음을 내기 위한 것이다. 삶에 대한 이야기이지 정치적인 주장이 아니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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