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에 고유가 충격이 가시화되고 있다. 국제유가가 배럴 당 60달러선을 넘어서 70달러를 향해 다가서자 소비심리가 얼어붙고 무역적자가 확대되고 있는 것. 기업들은 잇따라 매출과 순익전망을 하향 조정하고 있으며 특히 항공기 회사들은 비용부담을 줄이기 위해 요금인상에 나서는 등 대책마련에 돌입했다. 월가(街)에서는 국제유가 상승세가 지속될 경우 기업과 소비지출이 줄어들고 원유수입에 따른 무역적자가 큰 폭으로 늘어나면서 추세성장률인 3.5%의 경제성장률 달성이 힘들 것이란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고유가 여파는 소비심리가 얼어붙고 있는 데서 여실히 나타난다. 8월 중 미시간대학 소비자지수는 92.7을 기록, 전달보다 3.8포인트 크게 떨어졌다. 이는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평균치인 94.3을 밑도는 것으로 소폭 둔화(96.0)에 그칠 것으로 전망한 이코노미스트들의 예상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JP모건 자산운용의 앤터니 챈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소비자지수가 떨어졌다는 것은 고유가에 따른 기름값 상승을 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고용시장 개선과 주택가격 상승 등으로 민간소비가 활발히 살아나면서 미국 경제를 지탱하고 있었는데 고유가로 이러한 소비구조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의 6월 중 무역적자는 고유가에 따른 석유수입 급증으로 역대 세 번째로 많은 규모로 늘어났다. 6월 무역수지는 588억1,6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는데 이는 전달보다 6.1%나 크게 늘어난 것이다. 올 상반기 미국의 무역적자는 3,429억달러로 사상 최대에 달했던 지난해에 비해 11%나 확대됐다. 특히 6월 중 석유수입액은 199억 달러로 전달보다 9.8%나 급증했으며, 원유수입 단가는 44.4달러로 지난 4월의 44.76 달러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가에도 비상이 걸렸다. 단위노동비용 증가와 주택시장 활황 등으로 핵심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가 2%를 넘어선 가운데 수입물가도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 7월 중 미국의 수입물가는 전달보다 1.1% 상승했으며 이는 월가 전문가들의 예상치 0.7%를 크게 웃도는 것이다. 석유가격을 제외한 전반적인 수입물가는 0.1% 오히려 떨어졌지만 원유가격이 6.6% 급등하면서 수입물가 상승을 주도했다. 산업계도 고유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UAL, 델타항공, 컨티넨탈항공 등 주요 항공사들이 잇따라 국내선 항공요금을 인상해 유가급등 부담을 소비자들에게 전가시키고 있다. 일부 항공사들은 저가항공사들의 출현으로 수요위축에 시달리고 있는데다 유가급등으로 경영환경이 다시 악화되면서 파산위험에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또 세계 최대 네트워크 장비회사인 시스코와 개인용 컴퓨터 회사인 델이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적과 매출전망을 내놓았으며, 반도체 회사인 인텔은 마진율 악화로 투자의견이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두 자릿수 이상의 이익증가율을 기록한 미국 상장회사들이 올해에는 유가급등에 따른 비용증가로 수익률이 한 자릿수로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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