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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월가 외면하는 한국 금융산업


최근 노무라홀딩스 아메리카의 본사 이전이 월가의 주목을 받고 있다. 노무라는 금융위기 이후 파산한 리먼브러더스의 아시아와 유럽조직을 인수해 글로벌 금융플레이어의 도약을 꿈꿨다. 그러나 과다한 인수비용, 핵심인력의 이탈 등으로 인해 고전을 면치 못했으며 월가는 이를 조롱했다.

그러나 5년이 흐르는 동안 노무라는 두터운 장벽을 조금씩 허물고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3,000명이 근무할 수 있는 16층짜리 사옥을 맨해튼 미드타운에 마련한 것도 이러한 확장전략의 일환이다. 현재 노무라의 인력은 2,200명 정도다. 노무라는 채권발행 주선에서는 미국 내 14위, 주식발행 부문에서는 44위에 그쳐 여전히 월가 거대은행들과는 큰 격차를 두고 있지만 포기하지 않는 그들의 도전에 월가의 시선도 바뀌고 있다.

노무라가 안방인 일본시장에 안주하지 않고 월가 공략에 나섰던 것은 세계 기업금융(IB)시장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미국에서 성공함으로써 글로벌 은행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에서 비롯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노무라 사례를 들어 금융위기 이후의 은행들에 미국에서 성공할 수 없다면 그 어느 곳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점과 골드만삭스 등 미국 거대은행들이 월가를 차지하고 있지만 외국계 은행들이 공략할 수 있는 시장이 있다는 점 등 두 가지 교훈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새 정부 들어 한국에서도 금융산업의 글로벌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업계와 정부에서 커지고 있다. 사실 한국 금융산업의 글로벌화는 지난 20여년간 뒷걸음질쳤다. 단적인 예로 1997년 250개를 넘던 국내 금융기관의 해외점포 수는 지난해 말 현재 139개에 불과하다.

소규모 개방 경제인 한국에서 금융의 글로벌화는 은행 등 금융들의 수익기반 확대라는 단순한 목적을 뛰어넘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환경의 급변동에 대비해 채권과 유동화 증권 등의 현지 발행, 현지 외화 예수금 등 다양한 외화자금 조달 채널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금융회사들의 글로벌화는 동남아시장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여기에는 거대 글로벌 은행들의 격전장인 월가 대신 우리보다 한발 뒤쳐져 있는 시장이 공략하기 쉽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과거처럼 한국의 골드만삭스를 만들겠다는 식의 구호를 내세운 금융산업의 글로벌화는 허황한 것이었지만 손쉬운 시장으로 달려가자는 글로벌화 전략 또한 금융산업의 본류를 외면한 채 곁가지만 붙잡겠다는 것이어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요즘 뉴욕에 진출한 은행ㆍ증권 등 금융회사들의 직원들을 만나보면 생기가 없다. 지점장 등 고위직들은 한국 귀임을 손꼽아 기다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글로벌 전략에서 뉴욕이 후순위로 밀리다 보니 시장기반 확대나 네트워크 구축, 정보 수집 등 글로벌 브랜치로서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볼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은행영업도 거의 대부분 미국 진출 국내기업이나 동포 상대로 이뤄지며 증권사들은 한국 주식매매 주선 정도에 그치고 있다. 뉴욕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금융기업들의 수준은 노무라는 고사하고 중국계 금융기관들과도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다.

금융의 글로벌화는 문화나 언어적 배경을 갖춰야 한다는 점에서 제조업보다 훨씬 더 어렵고 시간이 걸린다. 더욱이 월가는 넘기 힘든 장벽일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제조업을 대표하는 삼성전자나 현대차가 손쉬운 동남아시장에서 안주했다면 오늘날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금융도 그렇다. 언제까지 좁은 국내에서 그리고 쉬운 시장만 찾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영자들의 임기 내에 성과를 내겠다는 단기위주의 전략 대신 먼 장래를 내다보며 꾸준한 투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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