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구제금융 협상이 지난 28일 일단락됐지만 시장의 불안감은 되레 증폭됐다. 구제금융의 다음 타깃으로 꼽히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향후 유럽연합(EU)의 지원 능력에 대한 의문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스페인에 대한 구제금융까지 감안할 경우 현재의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규모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여기에 EU가 구제금융 과정에서 민간 채권자의 손실부담(bail-in) 방침을 원칙적으로 합의한 점도 시장을 불안하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29일(현지시간) 유럽 금융시장은 아일랜드가 전일 구제금융 협상을 최종 타결했다는 소식에 오히려 크게 동요했다. 독일과 프랑스ㆍ영국ㆍ스페인 등의 주식시장은 이날 2% 넘는 급락세를 보였다. 유로화도 유로당 1.3197달러로 9월 중순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특히 아일랜드와 포르투갈ㆍ스페인은 이날 직격탄을 맞았다. 국가부도 위험을 반영하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의 경우(5년물 국채 기준) 아일랜드가 601bp(1bp=0.01%)를 비롯,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각각 539bp와 351bp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또다시 갈아치웠다. 스페인 10년물 국채의 수익률은 5.46%로 독일 국채와의 수익률 스프레드(차이)는 271bp로 커졌다. 1999년 유로화 도입 이후 최대치이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경우 내년 4월에야 국채상환이 돌아오는 등 당장 자금압박이 심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금융시장이 이처럼 불안한 것은 유로존 국내총생산(GDP)의 12%를 차지하는 스페인이 결국 도움을 청하게 될 경우 실제로 지원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비관론자로 유명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29일 체코의 한 회견장에서 "스페인은 '방 안의 코끼리(사태가 심각하지만 손 쓸 수 없는 상황)'이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 나라를 지원할 충분한 자금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HSBC가 스페인의 구제금융 규모를 3년간 총 3,510억유로로 추정한 가운데 현재 4,400억유로인 EFSF 규모로는 그리스와 아일랜드에 이어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모두 감당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EFSF의 효용성에 대한 논란도 있다. 노무라증권은 EFSF가 실제 구제금융에 투입할 수 있는 실탄 규모는 2,550억유로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했다. EFSF는 회원국들이 직접 출연하는 게 아니라 특수목적회사(SPV)가 지급보증을 받아 채권을 발행하도록 해 자금을 마련한다. 이 때문에 자금조달이 시장상황에 따라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것이다. 슈나이더포린익스체인지의 스티븐 갈로 시장분석대표는 "유로존 회원국들이 EFSF 자금을 분담하는 과정에서 내부반대 등 정치적 위험을 안게 될 것"이라며 "미국 정부가 부실자산구제계획을 집행했을 때처럼 유럽에서 신속하고 매끄러운 지원이 이뤄지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이 강력히 주장해온 민간 채권자의 손실부담 원칙이 결국 도입된 것은 유럽 은행들이 앞으로 재정위험 국가 채권 털어내기에 나서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장 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채권자들을 불안에 떨게 할 것"이라며 "시기가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로화에 대한 하락압력이 커지고 있으며 이베리아 국가(포르투갈ㆍ스페인)는 물론 이탈리아와 벨기에의 국채에 대한 리스크 프리미엄도 올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르키 카타이넨 핀란드 재무장관도 "우리는 투기적 수단을 없애는 데 목표를 뒀지만 앞으로 위기가 계속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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