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오는 2030년까지 원전 설비비중을 전체 전력설비의 41%까지 늘리는 것으로 돼 있었지만 이번에 알려진 2차 계획 초안에선 이를 2035년까지 26% 선을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듯하다.
현재 발전원 비중이 원전 26%, 석탄 31%, 가스 28%인 걸 보면 2035년까지 현 수준을 유지하자는 것이다. 사실상 이는 지난 정부가 내세운 원전확대정책에서 선회하는 것으로 지난 35년간 원전정책에 일대 전환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최근 국내 원전 비리ㆍ고장 등으로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국민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전력대란 막는 길 원전설비 확충뿐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대안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공급 위주에서 수요관리로의 전환은 기본적으로 국가전력 예비율이 충분할 경우 통하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의 예비율은 전력소비 최대시점 기준으로 5%를 오르내린다. 선진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냉방과 전등을 끄고 공장 적게 돌리는 비용을 보전해주면서 관리한 결과가 이 정도다. 여름ㆍ겨울마다 되찾아오는 전력난을 풀기 위해서는 원전 설비율을 높이는 게 급선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예비율은 20~30%이고 미국 31%, 독일 82%이며 특히 유럽은 계통이 연결돼 긴급 시 타국 전력을 끌어올 수 있다. 우리나라는 계통이 고립됐고 예비율도 낮다. 전력에 관한 한 섬나라나 마찬가지이며 부족한 잔량에 하루하루 근근이 버텨나가는 형국이다.
이제 우리도 전력예비율 목표를 20% 이상으로 잡고 백년대계를 세워야 할 때다. 노후화 등으로 인한 고장ㆍ예방 정지 등을 고려해 최소 예비율을 15%로 유지하고 불확실성에 따른 추가 예비율도 5%는 돼야 한다.
원전 건설이 무산되면 화력으로 이를 대체할 수밖에 없다. 결국 온실기체 문제와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안전을 담보로 지속 가능 친환경 기저전력을 확보하려면 현재로선 원자력뿐이다.
지난 5월 말 시험성적 위조 때문에 원전 3기가 멈춰 섰다. 이젠 불량 부품 때문에 신고리 3ㆍ4호기 준공도 미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올겨울에도 내년에도 전력난은 불 보듯 뻔하다. 온 나라가 또 한바탕 전기띠 졸라매기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원전 3기 정지로 우리나라 전력이 비상사태를 맞은 것과 달리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사고 후 무려 50기의 원전이 멈춰 섰지만 가스와 석유로 대체했다. 석유와 가스 소비가 많이 늘었지만 일본 전력사정이 크게 나빠지지 않은 것은 일본의 높은 예비율 때문이었다. 일본의 원전 비중은 30%. 예비율이 28%여서 원전을 모두 세워도 소비를 조금만 줄이면 수급에 큰 문제가 없다.
독일은 2022년까지 원자력을 전면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산업용 전기요금이 이웃 프랑스ㆍ네덜란드에 비해 약 40% 비싸고 재생에너지 차액 부담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2030년까지 2,000조원의 비용이 재생에너지 확대정책에 따라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조건 불신보다 현실적 대안 필요
좁은 땅에 자원 없고 전력도 사오지 못하는 한국은 어떠한가. 신재생에너지는 현재 원자력에 비해 풍력은 4배, 태양광은 10배 정도 비싸다. 더구나 하루 24시간 전기를 생산하는 석탄ㆍ원자력에 비해 이용률도 매우 낮다. 바람이 불거나 햇볕이 있어야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한계 때문에 국가계획으로 적극 반영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전력수급 비상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발전소 추가 건설을 통한 공급 확충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국가 전력수급정책에서 온실기체 감축과 국토 조건, 수입 의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원자력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또 수출을 통해 원전 산업을 국내시장에만 의존하지 말고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발전원으로 성장시켜나가야 한다. 후쿠시마발 방사선에 대한 공포로 흔들리고 일부 공무원과 사업자의 부정직과 비윤리로 무너져 내린 원전.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그래도 원자력이다. 국민이 못 믿는 것은 값싼 원자력이 아니라 구멍 뚫린 원전이라는 걸 직시해야 한다. 사람 잘못으로 길바닥에 버려진 원자력을 다시 주워 담아 가던 길 재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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