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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관청서 군병원… 기무사… 일반인 출입 어렵던 도심속 외딴섬
주변 골목길·미술관 마당 연결… 걷다가 자연스럽게 들르게 돼
건물 여러개로 쪼개 스케일 줄여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조화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에 위치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서울의 가장 중심이자 역사적인 공간에 들어선 미술관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인 경복궁의 바로 맞은편. 요즘 가장 '핫'한 거리인 삼청동길의 초입이자 북촌길의 끝자락에 위치한 이 건물은 개관한 지 2년도 안 돼 서울 도심을 대표하는 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주말이면 서울관은 미술 애호가는 물론 인근 삼청동과 북촌 나들이 중에 잠깐 들러 휴식을 취하는 시민들로 북적거린다. 하지만 원래 이 자리는 조선 시대 이후 일반인들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지극히 폐쇄적인 공간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전시실은 대부분 지하에 있다. 지하 전시실에 들어서면 다른 미술관과 달리 상당히 밝은 느낌이 든다. 전시공간 중앙에 선큰 마당을 배치하고 유리창을 통해 자연광을 지하로 끌어들인 데다 전시공간의 벽면도 온통 하얗기 때문이다.
민현준(사진) 건축사사무소 엠피아트 대표는 "우리나라 미술관은 작품 보호를 위해 전시공간이 어두운 경우가 많지만 유럽의 미술관은 대부분 밝은 편"이라며 "자연광과 인공조명을 통해 관람객들이 밝은 전시실에서 쾌적하게 작품을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새하얀 톤의 전시공간을 지나면 검은 벽면의 어두침침한 '블랙박스'라는 공간이 나온다. 영화 상영 및 영상·음향이 필요한 작품을 위한 공간이다. 같은 전시공간에서 빛과 어둠이 교차하며 생동감을 자아낸다.
블랙박스 외부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예술의 세계에서 나와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공간이다. 계단 밑에서는 바로 위 지상 공간이 보이지 않지만 계단을 하나씩 오를 때마다 인왕산이 차츰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며 현실로의 복귀를 환영한다.
전시동에서 미술관 마당을 가로질러 위치한 교육동도 민 대표가 전시관 못지않게 공을 들인 곳이다. 교육동 2층에는 폭 3m, 높이 5m가량의 초대형 창을 내 바로 아래 200년 된 비술나무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민 대표는 '건축은 도시'라고 정의했다. 처음에 낯설었던 도시가 오래 살면서 익숙해지듯이 서울관 또한 처음 오면 헷갈리는 공간이지만 두세번 찾아오다 보면 어느새 익숙해지고 그 진가를 알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설계로 서울경제신문이 공동 주최하는 '2014 한국건축문화대상'에서 사회공공 부문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지하 전시실엔 선큰마당, 자연광 최대한 끌어들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부지는 조선 시대 왕실 관련 사무를 담당하던 종친부와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가 있던 곳이다. 특히 이 자리는 한국의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상징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현재 미술관의 사무동으로 쓰이는 붉은 벽돌의 기무사 건물은 일제 강점기인 지난 1930년대 근대식 병원으로 처음 세워졌다가 광복 후 육군통합병원을 거쳐 1971년부터 국군보안사령부(이후 기무사로 개칭)가 사용하게 된다. 1979년 10·26 사태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신이 처음 안치됐고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12·12 쿠데타를 모의한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또 종친부가 있는 터는 조선 시대 규장각·사간원 등의 관청이 자리했던 곳이다. 종친부의 경우 신군부 집권 당시 테니스장을 만들기 위해 인근 정독도서관으로 옮겨졌다가 미술관이 조성되면서 원래 자리로 되돌아오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이처럼 서울관 부지는 조선 시대 왕실 관청과 일제 강점기 군 병원, 군사정권 시절 기무사 등 권위적인 공간으로 사용되며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은 도심 속 외딴 섬 같은 곳이었다. 이 같은 역사적 배경 아래 건립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설계 단계부터 철저하게 열린 공간을 지향했다. 서울관을 설계한 민현준 건축사사무소 엠피아트 대표(홍익대 건축학부 교수)는 "서울관 부지는 해방 전부터 일반 시민들의 출입이 금지돼 동맥경화에 걸린 것처럼 서울 중심의 연결된 흐름을 꽉 막고 있었다"며 "따라서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만드는 데 설계의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시민에게 활짝 열린 미술관은 주변의 골목길과 미술관 마당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완성됐다. 골목길을 걷다가 부담 없이 미술관에 들어올 수 있도록 사방에 진입로를 만들었고 미술관을 관통하는 통행로를 내 인근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지나다닐 수 있도록 했다. 서울관 곳곳에 들어선 마당 역시 개방된 휴식공간이다. 기무사 건물 옆 '열린 마당'은 삼청동길과 연결되고 교육동 앞 '도서관 마당'은 북촌길과 만난다. 서울관은 애초부터 건물보다 마당을 중심에 두고 만들어진 공간이다. 그동안 막혀 있던 공간이 열리고 새로운 중심이 생기자 인근 경복궁과 삼청동·북촌을 찾는 사람들의 동선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상업적으로 변해가는 삼청동 일대에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의 문화공간이 생긴 것이다. 서울관은 한마디로 튀지 않는 건물이다.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듯 경복궁과 인왕산, 북촌 한옥마을 등 주변 환경과 자연스레 조화를 이룬다. 비결은 건물의 스케일에 있다. 경복궁 및 북촌의 규모가 크지 않은 전통 건물들과 어울리도록 미술관 건물을 여러 개로 쪼개 전체적인 스케일을 줄였다. 외부로 보이는 건물의 스케일을 줄인 대신 지하에는 작품을 전시하고 보관할 대규모 공간을 만들었다. 건물의 재료 역시 주변과의 조화를 신경 썼다. 서울관의 외벽은 한옥 지붕의 암키와를 닮은 오목한 모양의 노란빛 테라코타 타일을 사용했다. 테라코타는 종친부·경복궁의 기와나 기무사 건물의 벽돌처럼 흙을 구워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흙이라는 재료를 통해 전체적인 통일감을 준 것이다. 민 대표는 "테라코타는 한옥의 기와처럼 따뜻한 느낌을 주는 데다 오랜 시간이 지날수록 푸근한 느낌을 주는 재료라서 선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서울관은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져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곳이기도 하다. 미술관 로비에 들어서면 한쪽 끝에 기무사 건물의 붉은 벽돌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반대편 창문 너머로는 종친부 건물이 보인다. 한 자리에 서서 조선 시대 종친부와 근대의 기무사 건물, 현대의 미술관을 모두 접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미술관 로비 '서울박스'에는 배가 공중에 떠 있는 모양의 작품인 '대척점의 항구'가 전시돼 있다. 작품 이름처럼 서울관은 대척점에 있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며 서로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다. 실제로 이 작품을 만든 아르헨티나 작가 레안드로 에를리치는 서울관 로비에서 창밖의 종친부를 바라보며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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