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의회가 향후 2년 동안 재정지출 규모를 늘리는 내용을 골자로 한 연방정부 예산안에 잠정 합의했다. 정치권은 그동안 양보 없는 싸움만 벌여온 민주·공화 양당이 오랜만에 합심해 셧다운(정부 폐쇄) 재발을 막고 장기 국가 재정계획을 논의할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언론들에 따르면 폴 라이언(공화·위스콘신) 연방하원 예산위원장과 패티 머리(민주·워싱턴) 상원 예산위원장은 10일(현지시간) 2014회계연도(2013년 10월1일~2014년 9월30일) 및 2015회계연도 정부지출 규모에 대한 합의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합의안은 2년간 정부 재량 지출을 당초 계획보다 638억달러가량 늘려 시퀘스터(예산 자동삭감)의 충격을 완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에 따라 2014년도와 2015년도의 재량 지출액은 법정 상한선인 9,670억달러를 넘어 각각 1조120억달러, 1조140억달러(2015년)에 이르게 된다.
대신 이들 초당파 위원회는 사회보장 프로그램의 축소기간을 연장하는 방식 등으로 향후 10년에 걸쳐 정부 채무 850억달러를 세금인상 없이 줄이는 데 합의했다. 예를 들어 공공의료보장제도(메디케어)의 경우 2021년까지 매년 2%씩 감축하기로 했던 데서 2023년까지로 늘릴 계획이다.
공항이용료와 공무원 연금납부액도 인상한다. 결국 2년간의 지출증가에도 불구하고 10년간 약 200억~230억달러의 부채가 줄어든다는 게 이들의 전망이다.
이번 안은 13일로 예정된 잠정 예산안 합의시한까지 하원에서 처리될 예정이다. 상원 투표는 이번주 말이나 다음주 초에 실시될 것으로 보인다. 표결에서 통과되면 미국은 내년 1월과 새 회계연도가 시작되는 10월에 걸쳐 셧다운 위기를 피할 수 있게 된다. 외신들은 이번 안이 양당 의원 다수의 지지를 받아 가결될 것으로 내다봤다.
공화당 소속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큰 변화는 아니지만 실질적인 재정개혁을 위한 중요한 진전"이라고 평가하며 법안 통과에 힘을 실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도 "이번 합의안이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의회가 힘을 모아 꽉 막힌 정국을 풀 능력이 있다는 긍정적 신호"라고 평가했다.
다만 티파티 등 공화당 내 보수진영이 합의내용에 불만을 품으며 반대할 뜻을 내비쳐 법안 통과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공화당의 신흥 대선주자인 마르코 루비오(플로리다) 상원의원은 "우리는 정부 채무감축과 양질의 일자리를 원하지만 이번 합의안은 둘 중 아무것도 만족시키지 못했다"며 "정부 지출을 늘려 미국인들의 어깨만 짓누를 뿐"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10월 초 예산안 통과에 실패해 셧다운 사태를 일으킨 미 의회는 내년 1월15일까지 정부 지출을 기존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동시에 극한대결로 국가를 위기로 내몰았다는 여론의 눈총 속에 초당파 위원회를 구성해 13일까지 재정지출에 대한 양당 합의안을 마련하기로 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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