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글로벌 기업들이 앉은 자리에서 막대한 환손실을 보는 것을 피하기 위해 결제통화를 바꾸거나 현지 기업과 합작사를 설립하는 등 장기적인 환리스크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고 5일(현지시간) 전했다.
글로벌 외환시장은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이 대두된 지난해 5월 이후 급격한 움직임을 보여왔다. WSJ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적어도 20개국의 통화가치가 미 달러화 대비 6%에서 크게는 37%까지 하락했으며 러시아 루블화 가치는 올해 들어서만도 8%가량 추락한 상태다. 환리스크 자문업체인 파이어앱스의 볼프강 쾨스터 최고경영자(CEO)는 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 등 신흥국들의 경제난과 우크라이나 사태를 비롯한 일부 지역의 정세악화까지 더해지면서 "세계적으로 기업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극심한 환 변동성에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농업용 및 소방용 비행기 제조사인 미 텍사스 에어트랙터의 경우 지난 1년간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 가치가 15%나 폭락하면서 현지 매출이 급감하고 있다. 식재료의 절반가량을 유럽에서 수입해 유로 또는 달러화로 결제하는 맥도널드 러시아는 루블화 폭락으로 경영에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이처럼 외환시장 여건이 악화하면서 일부 회사 최고재무책임자(CFO)들은 장기 대응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통화파생 상품을 통해 환리스크에 대응하는 기존의 헤지 방식만으로는 환손실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러시아 소재 통신사인 모바일텔레시스템스OJSC의 알렉세이 코르냐 CFO는 루블화 폭락에 따른 손실을 막기 위해 해외 납품업체들에 결제대금을 루블화로 낼 수 있도록 요청했다. 뉴욕 소재 소프트웨어 업체인 인포사 CFO는 달러화 결제에 따른 해외매출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고객사에 한해 해외 통화지급을 받아들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해외 통화는 현지 직원의 임금이나 운영비로 사용할 계획이다. 이 밖에 부식방지 패키징 소재업체인 노던테크놀로지스인터내셔널은 해외 합작사를 통해 환 헤지에 나서고 있다. 러시아와 말레이시아 등 24개국에 진출한 이 기업은 통화가치가 하락한 국가에서는 현금을 남겨두고 필요한 만큼을 통화가 강세를 보이는 국가에서 인출해 사용하는 방식으로 합작사를 통한 환리스크 대응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최근에는 유로화 강세를 활용해 독일 합작사 자금으로 배당금을 충당하기도 했다.
미 보험사인 클레멘츠월드와이드의 태런 코프라 CFO는 "모든 것을 달러화 기준으로 바꾸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환 변동성에 따른 영향을 피하기 위해 미국 본사 기능 중 일부를 해외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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