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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산책] 제3의 인생
입력2005-06-17 16:56:53
수정
2005.06.17 16:56:53
박정래 <시인·제일기획 미디어전략연구소 소장>
나이가 들어가면 갈수록 더 선명해지고 존경스러운 분이 계시다. 이제는 이 세상을 떠나셨지만 바로 아버님이시다.
아버님은 해방 이후 근대화의 격변기인 지난 50년 4월에 결혼을 하셨으나 신혼의 단꿈에서 깨기도 전인 6월25일, 민족동란이 터지면서 한달 만에 자원입대하셨다. 그 후 생과 사의 치열한 전쟁터에서 4년 동안 군복무를 하시고 바로 경찰에 투신해 33년을 근무하셨다. 거의 반평생을 말단 경찰관으로 봉직하셨지만 55세에 명예로운 정년퇴직을 하셨다.
인생 후반부가 훨씬 중요해
70년 말과 80년대 초에 대학을 다닌 필자로서는 유신 말의 답답하고 암울한 시대상과 10ㆍ26 이후 예측할 수 없는 정변과 무기력함에서 흐트러지지 않고 학업에 전념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이고 든든한 후원자가 바로 아버님이셨다.
경찰이라는 직업에서 청렴과 정직을 한번도 저버린 일이 없으시며 그 당시 슬로건처럼 민중의 지팡이로서 소임을 다하셨을 뿐 아니라 늘 이웃과 함께하는 푸근한 모습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 결과 녹슨 무공훈장ㆍ근정훈장과 13건의 훈ㆍ표창만이 유산으로 남았지만 자식들은 스스로 자립하는 법과 꿋꿋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운 셈이다.
아버님은 정년퇴임을 하시면서 그해 처음 실시된 공무원 연금제를 선택해 자생할 수 있는 인생을 계획하셨고 73세에 방광암으로 투병하시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자동차보험 설계사를 하시며 어려운 이웃, 친척, 자식들에게 스스럼없이 작고 큰 도움의 손길을 보태주시고는 하셨다.
그 자동차보험 모집인 일도 따지고 보면 재직 동안 아버님께 신세지고 아버님을 좋아하시던 이웃들이 차를 사면 달려와 보험 가입을 해 유지됐고 그분들이 사고가 나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사고처리ㆍ보험처리를 해줬으니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 또 다른 사회봉사 활동을 하신 셈이다.
필자도 이제 직장생활 20년이 넘었고 공자의 말처럼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라는 50을 바라보게 되니 아버님이 얼마나 어려운 삶을 인내하고 즐기며 사셨으며 어떻게 평범한 생에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셨는지를 깨닫게 됐으며 새삼 아버님이 더욱 그립고 존경스러워진다.
고령화사회가 도래하면서 젊은 날의 치열한 도전과 방황, 정착과 안정의 중장년기보다 인생 후반부가 훨씬 길고 중요하다고 한다. 인생 3분의 2의 경륜과 경험을 다시 사회에 환원하며 그동안 삶의 과정을 정리하거나 반추하며 진정 인생을 즐겨야 하는 시기를 제3의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필자도 이미 제3의 인생을 준비하기에 늦지 않았나 생각한다.
아마도 우리 시대에 제3의 인생은 아버님의 주어진 대로 헤쳐나가며 자신의 꿈을 퍼즐 조각처럼 맞춰 나가던 삶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선택해가야 하기에 더욱 어렵고 교묘하게 사회가 고착돼 있고 그러면서 다양한 변수가 통제하기에 자신의 꿈을 쉽게 체념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제3의 인생은 지금까지의 삶의 궤적을 벗어나 진정한 꿈을 찾는 삶이고 싶다.
첫째, 마음속에 두었던 진정 내가 하고 싶던 일을 하려고 한다.
둘째, 지금까지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이웃에 봉사하고 필자의 능력을 사회에 환원하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셋째, 바른 마음으로 미래를 아름답게 하고 밝게 만드는 모두에게 즐거운 일을 찾으려고 한다.
진실한 삶의 자세로 준비해야
넷째, 종교인은 아니지만 이 작은 지구촌과 지구촌의 사람들을 넓게 이해하고 사랑하는 노력을 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에 앞서 거창하지 않게 매일 주어지는 소임을 완수하고 최선을 다하는 삶에서 기회를 얻고자 한다.
6월, 어느 해보다 뜨겁고 변칙적일 것 같은 여름, 밖으로 나서면 주변 사람들은 조울증과 조급증, 개인과 그룹간 이기주의와 자기 중심주의, 성공과 돈에 대한 조바심과 왠지 모르는 긴장감에 모두 미칠 것 같다고 말한다.
누구나 다른 사람, 환경을 탓하지 말고 자기 영역에서 진솔하게 책임을 다하고 묵묵히 일한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편하고 아름다울까. 물론 아직까지 그런 사람들이 훨씬 많기에 이 사회가 버티고 있겠지만 말이다. 오늘따라 항상 큰 산의 그림자처럼 살다 가신 아버님이 몹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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