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m 앞의 크레인이 울진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한 비닐장갑 등이 담긴 샛노란색 200ℓ 드럼을 들어 약 30m 길이의 'ㄷ'자형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렸다. 오른쪽 가슴에 찬 휴대용 방사선측정기(TLD)에는 '0.0000밀리시버트(mSv)'라는 숫자가 떴다.
드럼은 약 10분간 컨베이어 벨트 위를 움직이며 방사성핵종분석기와 X레이 설비를 통해 방사능 농도와 표면 오염 여부 등 11개 항목을 검사 받았다. 주 제어실에서 드럼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자 크레인은 다시 드럼을 집어 이미 15개의 처분용기가 담긴 두께 10㎝의 콘트리트 처분용기에 담아 밀봉했다. 16개의 방사성폐기물 드럼이 담긴 처분용기는 지하 80m 깊이 자연암반에 마련된 사일로로 들어간 후 영원히 처분된다.
다음달 국내 최초로 경주에 위치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이 운영에 돌입한다. 지난 1986년 처음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에 대한 논의가 진행된 후 30년 만이다. 경주 방폐장은 2007년 7월 착공에 들어간 후 지난해 6월 최종 공사를 끝냈다. 지난해와 올해는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최종 승인을 얻어 다음달 운영을 앞두고 있다.
경주 방폐장 운영을 맡은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의 이종인 이사장은 "종합 시운전을 통해 다양한 조건에서 수없이 반복하면서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고 설명했다.
중저준위 방폐물은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한 작업복과 장갑, 헬멧, 덧신, 기기교체 부품 등이다. 처분은 '인수-운반-검사-처분' 순서다. 방폐물은 각 원전에서 국제해사기구(IMO)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검증을 받은 방폐물 전용선박인 2,600톤 규모 '청청누리호'를 통해 바닷길로 운반된다. 육상으로 옮길 때 발생하는 교통사고 등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다. 이 이사장은 "해상운송은 날씨가 안 좋거나 바닷길이 험할 때는 아예 운반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전했다. 도착한 방폐물은 방폐장 인수 저장고에 저장된다. 방폐물 처분을 시연한 이날도 인수저장고 오른편에는 선박과 트럭을 들여온 수백 개의 드럼이 쌓여 있었다.
콘크리트 처분용기에 담긴 방폐물은 운반 전용트럭에 담겨 1.4㎞의 지하터널을 통과해 80m 깊이 자연암반 속에 마련된 높이 50m, 직경 23.6m의 원통형 사일로에 저장된다. 축구장 3배 크기의 사일로 안에 27단으로 쌓인 처분용기는 쇄석과 콘크리트 등으로 밀봉된 후 완전히 지상으로부터 격리된다. 사일로는 리히터 규모 6.5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게 만들어졌다. 경주 방폐장에 마련된 6개의 사일로에는 올해 3,000드럼을 시작으로 앞으로 약 10만 드럼이 영구 처분된다.
이 이사장은 "경주 방폐장의 방사선량은 법적 규제기준인 연산 0.1mSv의 25분의1인 0.004mSv 수준"이라며 "시민들에게 안전성을 알리기 위해 올해부터 1만5,000명 이상의 방문객에게 시설을 공개해 처분과정과 시설개선 요구 등을 듣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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