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피아(관료 마피아)' 척결 대책의 핵심으로 꼽힌 일명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안)의 상반기 중 처리가 사실상 무산됐다. 여야는 일부 합의사항을 중심으로 19대 하반기 국회에서 김영란법을 집중 논의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세부내용을 두고 정치권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데다 소관 의원들의 교체에 따른 변수를 감안하면 법안심사 일정이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향후 하반기 국회에서 논의될 김영란법의 핵심쟁점 내용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해 정리한다.
◇김영란법 어디까지 적용해야 하나=김영란법의 적용범위를 어디까지로 규정할 것인가의 문제는 제정안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가장 기초적인 논의사항에 해당되지만 정치권이 제일 이견을 보이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 27일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김영란법의 적용범위를 사립학교·유치원 및 모든 언론기관 종사자로 확대한다는 데 잠정합의했다. 이 경우 직접 대상자 수는 184만명에 이른다는 게 정무위의 설명이다. 또 이들의 가족을 간접 규제 대상자로 포함시키면 약 1,800만명이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는다. 국민 세 명 중 한 명은 부정청탁 및 이해충돌과 관련해 규제를 받게 되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원장인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28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정부 보조금을 받는) 한국방송공사(KBS), 한국교육방송공사(EBS)가 적용범위에 (형평성에 따라) 들어가니 모든 언론기관도 들어가야 한다는 논리가 나온 것인데 사실 민간 언론사까지 포함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야당 역시 적용범위의 기준 마련을 위해 앞으로 심도 있는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표시한 상황이다.
현재 국회에서 합의된 내용 외에 정치권과 법조계에서 제시되고 있는 대안은 크게 두 가지다.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기관 및 단체는 이유를 불문하고 김영란법의 적용 범위에 넣자는 게 첫 번째다. 이에 따르면 교육기관이라는 특성상 적은 금액이라도 정부의 지원을 받는 사립학교·유치원은 물론 정부가 100%의 지분을 보유한 KBS·EBS 등이 포함된다. 정부지분이 70%인 문화방송(MBC)과 국고보조금이 투입되는 연합뉴스 역시 마찬가지다. 두 번째는 정부보조금의 금액기준을 설정, 그 이상을 넘는 기관·단체의 종사자에 대해서만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대안 역시 형평성 문제를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고 있다. 김영란법을 오래 연구한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보조금을 많이 받는 사립학교·유치원은 포함시킬 수 있겠지만 언론기관은 자체적으로 윤리규범과 의식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는 게 옳다"고 말했다.
◇ '연좌제 논란' 불거진 이해충돌 방지제도=이해충돌 방지제도는 때아닌 '연좌제' 논란에 휩싸였다. 이해충돌이란 공직자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가족관계·업무 등으로 이해관계가 얽힌 탓에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 김영란법에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공직자의 사적 이해관계(혈연·학연·지연·업무 등)가 얽힌 직무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시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이 같은 처벌조항이 공직자 본인은 물론 가족에게도 적용된다는 점에 있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김영란법(정부·야당안)에 따르면 직계존비속(조부모·부모·자녀 등)을 포함해 형제와 그의 배우자까지 이에 해당된다.
5월 중 두 차례 개최된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여야 의원들은 지금과 같은 이해충돌 방지제도가 직업선택의 자유 및 청원권 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예컨대 공직자의 사적 이해관계와 충돌하는 직무수행 범위와 관련해 예외사항을 가려낼 수 있는 제척·회피 조항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해충돌 방지제도를 도입하면 직무범위가 광범위한 국무총리·국무위원의 가족은 어떤 직업도 갖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의원들은 이에 대해 "헌법에 명시돼 있는 '연좌제 금지' 원칙에 저촉될 수 있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이처럼 위헌성 논란까지 불거지자 김용태 의원은 28일 고위공직자와 일반공직자에게 각각 다른 규정을 적용하는 내용의 대안을 제시했다. 고위공직자의 경우에는 민법에 명시된 가족 기준에 따라 광범위하게 처벌규정을 적용하되 일반공직자에 대해서는 '한 집에 살면서 생계를 같이 하는 가족' 정도로 범위를 한정하자는 것이다. 그는 고위공직자의 범위와 관련해서는 "장·차관급 이상의 공직자를 비롯해 광역자치단체장·국회의원·법관·세무공무원 등이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권과 법조계 일각에서는 공직자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김영란법을 일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선 공직사회까지 만연한 비정상적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고위공직자와 일반공직자 모두에게 강한 처벌을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국정 전반을 담당하는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 등에 한해 세부적으로 제척·회피 조항을 마련하면 위헌성 논란을 충분히 피할 수 있다는 게 법조계 일부 인사들의 의견이다. 정무위 소속 야당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국민권익위원회가 아직 이 부분에 대해 명확히 정리를 해오지 못한 상태인데 시간을 갖고 검토하면 명확한 기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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