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기어 다니는 큰 지렁이를 뜻하는 '나이트 크롤러(night crawler)'. 모두가 잠든 밤, 빠른 차와 고가의 장비로 무장한 채 경찰의 무전을 훔쳐 들으며 범죄·사고 현장의 영상을 찍기 위해 헤매는 프리랜서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의 고객은 시청률 올리기에 혈안이 돼 있는 방송국. 물론 영상에도 등급은 있는데 당연히 더 충격적이고 참혹할수록 비싸게 팔린다. 또 한 명보다는 다수 피해자, 빈민가에 사는 흑인보다는 부자 동네의 백인 피해자 영상에 값을 더 쳐준다.
영화 속 주인공 루이스 블룸(제이크 질레한)은 구직 실패를 거듭하던 중 우연히 교통사고 현장을 지나게 되고 이 '나이트 크롤러'들을 만난다. 그리고 곧 이 세계로 뛰어든다. 범죄·사고로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들은 애시당초 안중에 없었다. 이미 철조망을 잘라 고철로 팔아먹거나 길거리의 자전거를 훔쳐 돈을 마련할 정도로 윤리의식이 무뎌져 있던 그다. 금세 누구보다 적나라하고 유혈 낭자한 영상을 얻는데 성공한 그는 뉴스거리에 목말랐던 지역 채널의 보도국장 니나(르네 루소)를 만나 첫 거래를 튼다. 이후로도 승승장구. 루이스가 대담해질수록 시청률도 따라 올랐다.
좀 더 자극적인 영상을 얻기 위해서라면 가택 침입이나 시체를 몰래 옮기는 일 따위는 식은 죽 먹기였다.
영화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현재진행 중인 공포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배경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지만 우리는 다르다고 말할 수가 없다는 점이 더욱 서늘하다. 반복된 구직 실패 끝에 범죄와도 같은 일에 빠져든다는 이야기는 낯익다. 미담(美談)보다는 흉사에 집중하는 언론의 속성 또한 마찬가지다. 회의감을 느끼면서도 지금 기록하는 것들이 역사가 되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여보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더 자주 자문하고 있다. 우리가 기록하고 있는 것 또한 이와 비슷한 광기의 역사인 것은 아닐까.
퀭한 눈을 하고 더 끔찍한 사건을 찾아 밤거리를 헤매는 루이스의 표정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오싹하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현대인의 얼굴을 그대로 투영한 데서 비롯한 공포인 듯하다. 일종의 '소시오패스' 루이스를 연기하기 위해 제이크 질레한은 체중을 13Kg나 감량했다고 한다. 2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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