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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산책] 순응과 적응의 철학

피동적 순응 바람직하지 않아… 사회·자신에겐 적응이 필요

두해 전 한 여성이 남편과 함께 창업 상담차 찾아왔다. 금융회사 지점장으로 근무하다 명예퇴직을 한 남편이 1년 이상 쉬고 있으니 적당한 창업 아이템을 찾아달라는 부탁이었다. 상담 도중 남편은 “지금까지 내가 먹여 살렸으니 이제부터 당신이 나 좀 먹여 살리지”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남편이 먼저 나가고 나서 그 여성에게 “내가 상담해줄 만한 내용이 아니니 차라리 취직을 하도록 유도해보는 것이 어떠냐”며 조심스럽게 돌려보냈다. 예상대로 그 부부는 창업을 하지 못하고 더 쉬운 방법(?)을 찾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그 이후 한두번 연락이 닿아서 물어보니 남편은 여전히 놀고 있고 그녀는 주류소매업(liquor shop)을 준비한다고 했다. 우리는 통상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전개되는 상황을 강하게 부정한다. 그래도 그 현상이 계속되면 결국 분노하고 힘의 한계를 느낄 때는 협상을 한다. 협상에서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을 경우 우리는 우울증을 경험하게 되고 우울증이 지속되면 자연스럽게 그 현상에 대하여 순응하기에 이른다. 그 남편도 역시 처음에는 그동안 자신의 업적을 무시한 명예퇴직 압력에 강한 부정을 했을 것이고 분노도 느꼈을 것이다. 남편은 회사가 퇴직자에게 마련해준 부실채권 회수 업무인 금융팀에서 일했지만 자신을 버린 조직에 대한 원망 때문에 우울해 하다가 현실과 부딪혀서 승산이 없음을 안 다음에는 순응하게 됐을 것이다. 순응(順應).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것인가. 사전적 의미로는 ‘순순히 응함’이다. 화학적 개념으로는 ‘계속적인 같은 크기의 자극으로 그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심리적 개념으로 보면 ‘어느 한 현상에 대해 포기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보면 순응한다는 것은 그리 좋은 현상은 아니다.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하려는 학생들은 처음에는 아주 열심히 모집 정보도 찾고 이력서도 보내면서 열정적으로 도전한다. 그러다가 수십번의 실패를 겪게 되면 사회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며 분노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눈높이를 낮춰 재도전을 하게 되지만 그때는 이미 사회와 협상을 한 결과다. 그래도 안될 때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고 결국 자신을 학대하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낮춰 인정해버린다. 즉 그 현상에 대하여 순응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노는 것에 익숙해지고 핑계를 댈 수만 있다면 계속 놀고 싶어지는 심리가 생긴다. 지금까지 상담 결과를 보면 졸업 후, 혹은 퇴직 후 새로운 일을 찾는 사람들 가운데 6개월 내에 새로운 일을 찾지 못하면 사회와 협상 수준에 이르고 1년이 경과하면 순응 단계로 이어지는 것 같다. 그때쯤이면 의욕이 없어져 어지간한 일에는 관심도 갖지 않는 경우도 많다. 사실 우리는 매일같이 순응할 것을 강요받고 산다. 신호등의 색깔에 따라 운전해야 하고 시험이라는 순응 과정을 통해 합격 여부를 판정받는다. 그러나 쉽게 순응해버린 사람에게는 미래가 없다. 생물학적 측면에서 적응이란 ‘생물의 형태나 기능이 환경 조건에 적합해 개체와 종족 유지에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을 말하는데 다시 말하면 사회 환경에 적합한 방향으로 개조됐다고 보는 것이다. 사막의 선인장 잎이 가시로 변하지 않았다면 지금 지구상에 선인장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비즈니스 모델의 허구성을 들어 C 학점을 준 교수에 순응했다면 프레드 스미스의 페덱스는 없었을지 모른다. 순응. 그것은 자연에 해당되는 말이다. 풍수지리나 토담집은 자연에 순응하기 위한 작은 몸짓이며 화학 재료를 자제하고 유기농을 섭취하는 것은 인체에 순응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그러나 사회나 자신에 대해서는 순응이 아닌 적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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