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에 들어가더라도 조심스럽게 '미니 스텝'으로 진행할 것입니다. 글로벌 자금시장에서도 '그레이트 로테이션'이 즉각 나타나지 않는 대신 당분간 주식으로 대표되는 리스크 투자와 안전투자가 공존하게 될 것입니다." 통화정책 및 금융·재정·중앙은행론 등 거시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찰스 굿하트(사진) 영국 런던정치경제대(LSE) 명예교수는 금융위기가 발발한 지 6년째 접어드는 올해를 기점으로 전세계 경제가 정상화(to be normal)의 단계를 밟아나가게 될 것으로 진단했다. 특히 미국 경제의 회복세가 다른 권역에 비해 높을 것으로 예상하고 연준의 테이퍼링도 이 같은 기대에 기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의 회복속도는 각 권역에 따라 큰 편차를 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금융위기의 주범이었던 금융권에 대한 규제와 관련해서는 "위기 재발을 막기 위한 영미권 은행규제책은 핵심을 건드리는 데 못 미치고 단지 일부 나쁜 관행에 제동을 거는 수준"이라며 "은행권 '대마불사(too big to fail)'를 막는 데는 실패할 것"이라고 말했다. 굿하트 교수와의 인터뷰는 지난해 12월 말 영국 런던의 LSE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연준이 테이퍼링에 나섰습니다. 2014년 세계 경제는 어떤 변화를 보일까요.
△전세계 경제는 점진적인 회복 국면에 접어들게 될 것 같습니다. 이미 위기가 발발한 지 6년이 흘렀고 일부 은행권을 제외한 일반 산업 등 실무경제 각 영역에서는 위기 전 수준의 정상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의 회복속도는 빠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각 권역·국가별로 편차가 커 이에 대한 영향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연준의 테이퍼링 속도 역시 느릴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전세계 경제는 올해를 기점으로 또 다른 미지의 영역(uncharted territory)에 들어서게 됐습니다. 그러나 안전자산에서 위험투자로 중심기조가 이동하는 '그레이트 로테이션'이 급격하게 촉발될 만한 여건은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선진권 중에서는) 미국 경제의 회복세가 돋보이겠지만 여전히 각 권역별로 차이가 큽니다. 결국 한동안은 채권투자와 주식 외 위험투자가 공존하는 상황이 지속될 것 같습니다. 미국의 출구전략도 느리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테이퍼링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미미한 점도 '미니 스텝'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각 권역별 회복기조는 어떻게 진행될까요. 영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버블 징후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선진국가 중에서는 말씀드린 대로 미국의 회복속도가 가장 돋보일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미국 역시 수출실적 등에서 다른 나라의 회복속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권역 내 경제편차가 큰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은 앞으로도 한동안 이의 파장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보입니다. 영국 경제의 회복속도는 유로존과의 연관성 측면에서 해석돼야 합니다. 유로존보다 나은 경제여건이 영국 경제의 정상화를 이끄는 주요 요인으로 보입니다. 아시아 등 신흥시장에서도 여건을 갖춘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 사이에 차별화가 갈수록 진행될 것입니다.
-결국 전세계 경제의 회복이 위기 전 이상의 발전이라기보다는 '정상기조'를 되찾아가는 수준이라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세계 경제에 새로운 발전이 더해진다기보다는 정상화를 달성한다, 마무리한다는 표현이 올바른 것 같습니다. 그동안 저평가된 부분으로 투자와 생산이 집중되며 기저효과에 따른 회복양상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위기 뒤) 6년은 꽤 오랜 시간입니다.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 등 부실은행의 위기 진화에는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전체 산업 측면에서는 새로운 흐름이 이미 나타나고 있습니다. 선진권에 새로운 위기가 발발할 가능성은 많지 않고 회복의 질과 양상에 더 초점이 맞춰지게 될 것입니다.
-위기 가능성이 낮고 새로운 경제기조 속에 정상회복 단계를 밟고 있다면 금융위기가 끝났다고 봐도 될까요.
△경제 각 주체가 정상화에 도달해가고 있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물경제의 흐름은 늘 지표 추이를 우선해온 것도 사실입니다.
-금융위기 이후 각 정부는 위기 재발을 위해 갖가지 규제정책을 도입했습니다. 최근 도출된 미국의 볼커룰 등이 대표적인데요, 이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십니까.
△현재까지 도출된 정부규제책으로 은행권의 '대마불사'를 막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미국·유럽 등지의 은행권 규제는 위험투자를 막기 위한 실질규제와는 거리가 있는 '용두사미' 수준이 되고 있습니다. 글로벌 은행들의 시장 장악력을 축소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각 정부의 규제방향에는 올바르게 보이는 것도 있지만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위기 이후 은행권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정부 벌금과 여론 등의 영향으로) '그들만의 리그' 내 투자관행에는 일부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각 정부가 도입을 추진해온 '토빈세(단기 외환 거래세)'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지난 봄 교수님의 방한을 전후로 토빈세 도입 논의가 잦아든 바 있습니다.
△토빈세는 단기 외환 거래에 세금을 부여해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줄이는 게 목적이지만 외환시장의 안정성을 높이기보다는 오히려 변동성이 더 커질 가능성이 큽니다. 일부 투자은행은 세금을 두 번 물게 되는 등 이중과세 우려도 상존합니다. 한국 등 신흥시장과 일부 유럽 국가 등에서 도입 논의가 철회된 것은 다행입니다.
-위기 이후 나타난 글로벌 정세 변화 가운데 하나라면 선진7개국(G7) 체제에서 주요20개국(G20) 체제로 이관된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십니까.
△위기가 잦아들고 있지만 글로벌 경제에 관한 현 G20 체제가 G7 등으로 다시 회귀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신흥시장의 역할을 빼고 글로벌 경제의 미래를 논의하기 어려워졌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G20 등이 위기돌파를 위해 도출해낸 글로벌 합의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선진권과 신흥권의 입장차이가 큰 만큼 적합한 결론을 도출하기가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참여 목소리가 늘어난 G20의 존재가 유지될 것이라는 점 자체가 가장 큰 변화일 것입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도 다시 변화가 오고 있습니다. 은행권이 안정성을 되찾아가면서 잠잠했던 '글로벌 허브 경쟁' 등도 다시 촉발되고 있는데요.
△다른 경제 각 분야와 마찬가지로 각 금융센터 역시 '정상회복'을 밟게 될 것입니다. 당분간은 영국·미국·싱가포르 등 기존 글로벌 금융 허브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위기 전 수준을 회복해가는 움직임이 예상됩니다.
-한국도 글로벌 금융 허브 경쟁에 뛰어들려 하고 있습니다. 조언이 있으십니까.
△금융은 현존하는 최고의 복합산업입니다. 한국의 여건은 통화의 국제화부터 언어·시차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로 불리합니다. 글로벌 금융센터를 구축하려면 독자적인 청사진이 가장 우선돼야 합니다.
■찰스 굿하트는
영란은행 금융통화위 설계자 재정-통화정책 균형론 주창 "외환거래 위축" 토빈세 반대
찰스 굿하트 런던정경대(LSE) 명예교수는 통화 및 재정정책, 금융안정, 중앙은행론 등을 아우르는 거시경제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다.
영국 영란은행(BOE)의 수석고문 출신으로 지난 1997년에 출범한 BOE 금융통화위원회(MPC)의 설계자이자 초대위원으로 활약했다. 통화량 등 특정 경제지표를 관찰하고 정책목표로 삼는 순간 지표가 본래의 움직임을 상실한다는 내용의 '굿하트의 법칙'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금융위기 이후 굿하트 교수는 실물경제의 위기에 대응한 정부 재정정책과 중앙은행 통화정책 간의 조화와 균형을 강조해왔다. 또 각국의 토빈세 도입 움직임이 일자 오히려 외환 거래량을 위축시켜 작은 외부 충격에도 환율이 급변할 수 있다는 논리를 들어 반대 목소리를 냈다. 그는 LSE가 학문적 성과가 탁월한 교수에게 수여하는 '노르만 소스노좌'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현재에도 공신력 있는 리서치로 유명한 LSE 파이낸셜마켓그룹(FMG)을 이끌면서 '영원한 현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약력 △1936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하버드대 박사 △1963년 케임브리지대 조교수 △1975년 '굿하트의 법칙' 발표 △1980~1985년 영국 영란은행(BOE) 수석고문 △1985~2002년 런던정경대(LSE) 교수 △2002년~ LSE 명예교수
◇주요 저서 '중앙은행의 진화' '금융위기의 규제 대응'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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