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현지시간)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몽드는 벌금부과에 대해 "(프랑스 은행에 대한) 교묘한 때리기"라고 비난했다. 르피가로도 최근 "미국 정부가 금융위기를 불러일으킨 자국 은행에는 관대한 처분을 내리면서 국내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외국 은행인 BNP파리바를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고 비판했다. 주간지 렉스프레스는 자금세탁과 세금탈루에 연루된 은행에는 훨씬 낮은 벌금을 매긴 데 반해 제재국과 거래했다는 혐의로 부과한 100억달러의 벌금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수단·이란 등 제재국과 거래금지 규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BNP파리바에 100억달러대의 벌금부과를 놓고 은행 측과 협의하고 있다. 미국 주도로 유엔과 EU는 이란과 수단을 제재 국가로 지정하고 회원국들의 거래를 금지했다. BNP파리바는 지난 2002~2009년 외국 원유기업들이 이란과 수단에 지불해야 할 원유대금을 미국에 있는 계좌를 통해 달러로 송금함으로써 제재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이 벌금액이 확정된다면 미 법무부가 기업의 불법행위에 부과했던 벌금 가운데 사상 최대 금액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까지는 원유유출 사고를 일으킨 BP에 지난해 부과한 40억달러가 최고 벌금액이다. BNP파리바의 1년 수익에 맞먹는 벌금이 실제로 부과될 경우 경영상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이 회사의 주가는 올 들어 10% 가까이 빠졌다.
천문학적 벌금 규모에 놀란 프랑스 정치권과 정부는 자국 기업 옹호에 나섰다. 최근 유럽의회 선거에서 약진한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은 성명서에서 "미국 정부가 자국 은행들의 경쟁상대인 BNP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계략을 펴고 있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프랑스 정부가 이를 좌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유력 야당인 대중운동연합(UMP)도 "이번 사건은 미국이 사법권 집행과 무역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시도"라고 규탄했다.
아직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집권당이 공식적인 반응을 자제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건이 당사국들 간의 외교·통상 마찰로 벌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이 6일 프랑스에서 개최되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70주년 행사 참석차 프랑스를 방문할 예정이어서 양국 정상 간에 어떤 식으로든 논의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고 있는 올랑드 대통령이 국내 여론을 고려한다면 미온적으로 대응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피에르 를루슈 전임 프랑스 통상장관은 "EU와 미국이 FTA 협상을 벌이는 상황에서 프랑스 정부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다면 여론은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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