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올해 복지예산이 약 115조원으로 전체 예산의 30.8%에 달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교해보면 아직 최하위 수준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 가구의 23%, 4가구 중 1가구가 적자다. 지금까지의 정부의 경제복지정책, 국민의 경제생활 태도, 기업의 사회공헌활동 등 모두를 재점검하고 혁신해야 할 시점이라 본다.
문제는 돈이다.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 것인가. 소비자들이 찾아가지 않아 금융회사에 잠자고 있는 돈인 미청구재산(unclaimed property)을 활용하는 방법을 생각해보자. 은행이나 보험사는 지난 2008년부터 협약에 따라 휴면예금이나 휴면보험금을 미소금융재단에 출연해왔다. 미소재단에서는 이를 재원으로 영세 자영업자 자활지원과 취약계층에 대한 소액대출 등 다양한 복지사업에 활용하고 있다. 또한 저소득층 아동, 장애인 복지시설 등 각종 위험에 노출되기 쉬운 금융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소액보험도 지원한다. 비록 출연됐다 하더라도 원권리자가 청구하면 언제든지 전혀 불편 없이 되돌려주고 있다. 지난 6년간 출연된 휴면 예·보험금 8,780억원 중 17.8%인 1,563억원을 원권리자가 찾아갔다.
카드사에서는 미사용 카드 포인트 일부를 여신전문금융협회에 기부하고 이를 재원으로 사회공헌 사업을 하고 있다. 이 외에도 미청구재산에는 휴면성 신탁금, 미수령 주식, 상품권 낙전 등이 있다. 소비자들이 찾아가지 않아 회사에 잠자고 있는 돈이 약 2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최근 6년간 소멸된 카드 포인트는 6,030억원으로 휴면예금과 달리 포인트는 한 번 소멸되면 사용할 수 없다. 무심코 맡겨놓았던 내 권리가 사라진 것이다. 5년간 미거래 '휴면성 신탁' 계좌는 2,400억원, '잠자는 주식'도 시가로 3,300억원이나 된다. 이는 결국 회사의 특별이익으로 잡힐 것이다. 최근 대법원 판결에서 5년간 무거래 예금이라 하더라도 계속 이자를 지급하는 예금이라면 소멸시효가 중단되므로 휴면예금으로 볼 수 없다고 한다. 이로써 은행 휴면예금을 활용한 복지사업 추진마저 난관에 처해 있다. 미국에서는 각 주마다 미청구재산법을 제정하고 이를 근거로 주정부가 이 재산을 이관받아 사회복지 서비스에 사용하고 있다. 대상도 예금과 보험금뿐만 아니라 주식·채권·배당금·상품권·양도성예금증서·미지급임금 등 다양하다. 미청구재산에 대한 미국과 우리나라의 가장 큰 차이는 재산 이동 방식이다. 우리나라는 소멸시효 완성 이후 출연하는 방식이지만 미국에서는 재산의 이동, 즉 이관방식이다. 우리도 참고할 만하다고 본다.
십시일반(十匙一飯)이 되고 티끌 모아 태산이 된다고 한다. 미소재단에 출연된 휴면계좌 대부분은 소액이다. 개인에게는 작은 돈이지만 한데 모으면 큰 재원이 될 수 있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의 자활을 도울 수 있는 소중한 마중물이다. 기업, 특히 금융회사에 잠자고 있는 돈을 사회적 복지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법률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함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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