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극심한 대립에서 보듯 우리 사회의 갈등 수위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심각한 사회적 갈등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양극화·세대갈등·지역갈등 등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는 구조적 원인은 다양하고 단기간에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정치의 영역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데이비드 이스턴은 정치를 '가치의 권위적 배분(authoritative allocation of values)'이라 했다. 다시 말해 정치는 시장원리나 가족(공동체)원리가 아닌 권위·권력의 원리 혹은 수단으로 희소가치를 할당·배분하는 시스템이라는 얘기다.
정당·언론·시민사회 등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는 정치적 시스템에 관계하는 사람(집단)들이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지 말고 조정·완화·해소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적 석학 폴 크루그먼은 '미래를 말하다(The Conscience of a Liberal)'에서 미국 사회를 역사적으로 분석하며 "경제적 불평등이 정치적 극단을 낳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적 양극화가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켰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이 정치적 제휴를 했을 때 경제적 불평등이 완화됐고 극단적으로 대립했을 때 불평등이 심화됐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정치 양극화, 경제 불평등 심화시켜
보수 대 진보식의 진영논리와 대립이 한국 정치와 시민사회에서 판을 치고 있다. 이념대립과 딱지 붙이기 속에서 진지한 토론과 합리적 의견은 질식사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가 단순히 이분법으로 진단되고 해결될 수 없음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건만 정파적·진영적 입장에서 문제는 왜곡되고 오도된다. 편가르기 속에서 네 편으로 낙인 찍은 순간 상대방의 의견은 토론의 대상이 아닌 격파의 대상이 되며 합리적인 의견은 매도당한다.
정당뿐 아니라 언론, 시민사회, 오피니언 리더 등을 포함하는 광의의 정치가 본연의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원칙이 세워져야 한다. 우선 사실(fact)에 기반을 둔 합리적 토론을 해야 한다. 진영논리가 발현되는 가장 대표적인 양상 중 하나가 기본적인 사실에서 논의를 출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재하는 사실이 아니라 조작되거나 재해석된 사실에 의거하거나 근거 없는 논리의 비약들이 난무하는 방식으로는 합리적 토론이 될 수 없다.
게다가 요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전파되는 여러 괴담, 소문, 인신공격성 발언 등은 사실에 기초한 합리적 토론을 막는다.
신뢰·소통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자본을 강화해야 사회 구성원들이 배타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서로 협력해 사회 전체의 이익 실현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철학자 아비샤이 마르갈리트는 '품위 있는 사회'에서 '문명화된 사회는 사회구성원들이 서로 모욕하지 않는 사회이며 사회제도가 사람들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라고 규정한 바 있다. 우리 사회는 품위 있는 사회는 고사하고 문명화된 사회에 이르기에도 한참 멀었다. 너도나도 앞다퉈 상대를 조롱하고 모욕하는 일이 일상화된 우리 사회의 병폐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시급하다.
둘째, 우리 사회의 보편적 가치에 기초해 합리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이념과 가치가 존재하며,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를 실제로 변화·발전시켜나가고자 하는 정책대안이라면 그간 우리 사회가 합의해온 보편적 가치에 기반을 둬야 한다. 헌법적 가치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고 국민의 상식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것이다.
사실·보편가치 기반 대안 모색을
이러한 보편적 가치를 기본으로 할 때만 한국 사회를 변화시킬 합리적 대안 모색이 가능할 것이다. 어떠한 주의·주장이 헌법적 가치와 국민적 상식에서 벗어난 것이라면 사회적 피드백 시스템에서 걸러지고 비판받도록 해야 할 것이고 이러한 시스템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독일 출신 정치이론가 한나 아렌트가 말했듯이 민주주의에서 공론장이 특히 중요하고 동일한 세계연관성을 가지면서 존재하는 다양한 관점들의 상호작용이 핵심이며 공론장에서는 보고 듣기에 적절한, 그리고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만이 공적인 빛을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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