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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앤 조이] 장인정신·신뢰경영… '松商의 후예들'

■ 불황 속에도 빛나는 '우리시대의 개성상인들'<br>OCI·아모레퍼시픽·에이스침대…<br>낮은 부채율·풍부한 유동성 자랑


(위) 에이스 침대 안성호 사장 (아래 좌) 이수영 OCI 대표 (아래 우)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대표이사

‘마지막 개성상인’ OCI(옛 동양제철화학)의 고 이회림 명예회장을 칭하는 말이다. 1917년 개성에서 태어난 고 이 명예회장은 송상(松商)의 도제생활을 거쳐 상업의 길로 들어선 ‘마지막 개성상인’ 중 한 사람이다. 개성에서 송도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강형근 상점’에 들어가 비단을 파는 점원 생활을 시작했을 당시 그의 나이 14세. 그는 개성상인 특유의 도제식 경영 수업을 거쳐 1959년 동양화학을 설립, 2007년 아흔 살 나이로 작고하기까지 반 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회사를 이끌었다. OCI가 50년 넘는 장수기업으로 자리잡은 데는 공업화가 시작되면 화학업종의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이 명예회장의 식견이 단단히 한몫했다. 그의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아 OCI는 해마다 성장을 거듭, 세계 금융위기가 휘몰아친 지난해에는 창업 이래 처음으로 매출 2조원대를 돌파하는 중견기업으로 도약하며 기업 저변에 뿌리박힌 개성상인의 저력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개성상인의 기원=‘송방(松房)’ 또는 ‘송상(松商)’이라 불리는 개성의 상업세력은 본래 태조 왕건의 고려 건국을 뒷받침한 주축 세력이었으나 이들은 벼슬 대신 상업에 전념해 전국 시장의 경제권을 장악했다. 17~18세기에 최전성기를 누린 송상은 경기를 중심으로 육로를 따라 북쪽으로는 황해ㆍ평안 지방, 남쪽으로는 충청ㆍ경상 지방까지 영향력을 미쳤으며 전국 각지에 ‘송방’이라는 지점을 세워 조직적으로 상권을 관리했다. 그들은 특히 자식에게 경영 수업을 시키기 위해 다른 상인의 상점에 수년 동안 취직시켜 일을 배우게 하는 ‘차인제(差人制) 인사수습제도’를 실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출세길이 막혔던 구 왕조의 사대부 및 지식 계층이 개성상인으로 흡수되면서 합리적 경영과 상술 개발에 큰 보탬이 되기도 했다. 또 서양보다 200년 앞섰다는 복식부기 회계장부인 ‘사개송도치부법(四介松都置簿法)’을 도입하는 등 일찍부터 선진 경영방식에 눈떠 이탈리아의 베니스 상인, 일본의 오사카 상인에 견줄만한 상도와 철학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백 년 동안 쌓아온 개성상인의 전통은 21세기에도 여전한 힘을 발휘한다. 한국전쟁 당시 월남해 대한민국에서 기업을 일군 개성상인들의 후예들은 오늘날까지도 ‘무차입경영ㆍ신뢰경영ㆍ한우물경영’이라는 송상의 경영철학을 실천하며 우리 경제를 든든하게 떠받치고 있다. 특히 오늘날까지 빛을 발하는 개성상인의 가장 큰 특징은 탄탄한 재무구조를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개성상인의 무차입 경영 철학은 개성상인 후손들이 경영하는 기업들이 IMF 외환위기를 순조롭게 넘긴 밑거름이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개성상인들은 한 가지 사업을 정하면 최고에 이를 때까지 한 우물만 판다는 특징도 갖고 있다. 돈이 된다 싶은 사업에 무조건 뛰어드는 문어발식 확장을 지양하고 우직스럽게 한 가지 업종에만 역량을 집중해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불황속 호황 누리는 OCI=마지막 개성상인이 설립한 OCI 얘기로 다시 돌아가면 창업주 덕분에 OCI 직원들은 남들 다 어렵다는 요즘에도 주위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있다. 회사의 생산직 직원들은 얼마 전 800%에 달하는 성과급을 손에 쥐었고 300여명의 인턴직원까지 새로 뽑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안정된 일자리에 뜻하지 않은 목돈까지 챙기니 직원들 얼굴엔 함박웃음이 가득하다. 얼마 전에는 신사업에도 과감하게 뛰어들어 한발 앞선 경영감각까지 자랑하고 있다. OCI는 지난 2006년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태양광산업의 핵심 소재산업인 폴리실리콘 사업에 전격 진출했다. 올해 공장 2개를 추가로 완공하면 2010년에는 2만6,500톤의 폴리실리콘 생산능력을 갖춘 명실상부한 태양광 에너지 업체로 변신하게 된다. OCI의 한 관계자는 “신용을 생명처럼 여기는 개성상인의 전통이 여전히 중요한 가치로 남아 있다”며 “특히 이수영 회장의 과감한 태양광 진출 결정은 회사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가져다줬다”고 설명했다. ◇불황극복형 모델로 각광받는 송상 후예 기업=송상의 후예 기업들은 OCI처럼 불황에도 불구 발군의 경영 성과를 올리며 다시금 조명받고 있다. 송상의 DNA에 각인된 ‘무차입 경영ㆍ신뢰경영ㆍ한우물 경영’의 경영철학을 간직해온 이들 기업이 우리 시대에 ‘불황 극복형’ 경영방식을 제시하는 모델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개성 출신인 고 서성환 회장이 창업한 아모레퍼시픽은 탄탄한 실적을 자랑하는 우량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930년대 개성에서 모친과 함께 동백기름을 짜서 만든 머릿기름과 구리무(크림), 가루분(백분) 등을 팔며 장사를 시작했던 고 서 회장은 광복 직후 ‘태평양화학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해 오늘날 아모레퍼시픽의 기틀을 세웠다. 고 서 회장의 개성상인 기질은 그의 뒤를 이은 아들 서경배 대표이사에게 고스란히 이어져 화려하게 꽃을 피우게 된다. 서 대표는 기획조정실 사장으로 근무하던 94년 당시 경기호황을 타고 대다수 기업들이 몸집을 불려가던 것과는 달리 야구단과 농구단, 태평양패션 등 비주력 계열사들을 과감히 정리해 다가올 경제위기를 버텨낼 힘을 축적하는 데 성공한다. 수많은 기업들이 추풍낙엽처럼 사라지던 IMF 외환위기 당시에는 연 매출 5,000억원대의 메가 브랜드 ‘설화수’를 만들어내며 본격적인 성장 엔진을 장착한다. 실속을 중시하면서도 필요할 때 뚝심을 부릴 줄 아는 송상의 후예다운 특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순간들이다. 불황이 한창인 요즘도 기세는 여전해 올 1ㆍ4분기 전년 동기 대비 18.4% 성장세(매출 4,628억원)를 기록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최근 경기도 오산에 통합 SCM기지를 착공하고 2015년까지 매출 5조원의 ‘글로벌 10’으로 거듭나기 위해 기반을 다지고 있다. 6ㆍ25전쟁 당시 혈혈단신으로 남하해 미군 잡역부로 일하며 야전침대 위에서 사업을 구상했다는 안유수 회장의 ‘에이스 침대’ 역시 해마다 두자릿수 성장세를 지속하며 내수시장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송상의 후예 기업이다. 에이스침대는 지난 십여 년 동안 단 한차례도 흑자기조를 벗어난 적이 없다. 특히 안 회장의 장남인 안성호 대표는 2002년 에이스침대 대표이사로 취임한 당시 부친의 뜻에 따라 ‘무차입 경영’을 선언한 것으로 유명하다. 카드사태로 소비침체가 시작되던 당시 분위기를 감안하면 파격적이라 할만했지만 송상의 전통에 따른 그의 결단은 경기불황 속에서도 풍부한 유동성과 낮은 부채비율로 건전한 경영을 이어가는 근간이 됐다. 개성 출신 경영자를 얘기할 때 결코 빠뜨릴 수 없는 또 한사람은 윤장섭 성보실업 회장이다. 윤 회장이 진두지휘하는 성보실업ㆍ성보화학ㆍ유화증권 등은 무리한 사업확장이나 기업 인수ㆍ매매 등에 개입하지 않는 내실경영을 추구하며 창립 이후 50여년 동안 한번도 경영권이 바뀌지 않은 진기록을 갖고 있다. 유화증권의 경우 대다수 증권사들이 무리한 투자로 수익성 악화에 빠졌던 지난해 순이익을 27%나 늘리며 알토란 같은 실적을 자랑했다. 이밖에 한일시멘트ㆍ삼정펄프ㆍ신도리코ㆍ한국야쿠르트ㆍ대한유화 등도 개성상인의 강인한 명맥을 이어오며 낮은 부채비율과 풍부한 유동성을 무기로 불황 속에도 꿋꿋하게 버텨내는 대표 기업들이다. 이북5도청 장명희 개성시민회장은 “수백 년을 이어온 개성상인 특유의 근면ㆍ신뢰ㆍ검소 등의 덕목은 시대를 초월해서 기업경영에 빼놓을 수 없는 기초적이자 중요한 가치”라며 “이들 기업은 21세기에도 한국 제조업을 지탱하는 역군들”이라고 말했다. 주우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개성상인 특유의 치밀하고 안정적인 경영방식은 위기일수록 파워를 발휘하기 마련이며 특히 요즘과 같은 불황에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안정 위주에 머무르지 말고 한발 앞선 투자를 하는 감행하는 ‘스피드’는 보완해야 할 경영 덕목으로 지목됐다. 주 교수는 “최근의 경영환경에서는 자본 흐름이 빨라지고 인수합병(M&A) 등 공격적인 투자가 중시되고 있는 만큼 글로벌 시대에 걸맞는 변신의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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