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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서울시장님, 법대로 좀 합시다


기자가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를 담당하던 10여년 전. 당시 건교부는 일선 지방자치단체에 '법규에 명시되지 않은 이유로 건축 행위 등을 제한하거나 금지하지 말라'는 취지의 공문을 내려보낸 적이 있었다. 지방자치제 이후 일선 지자체들이 정당한 개발사업까지 근거 없이 인허가를 내주지 않아 개인과 기업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잇따르자 내놓은 지침이었다. 법에 규정된 대로 모든 요건을 갖췄는데도 이러저러한 핑계와 트집을 잡으면서 인허가를 미루고, 이 과정에서 시간이 곧 돈인 사업주로서는 싫든 좋든 '급행료'를 내야 하는 잘못된 관행이 워낙 심각하다 보니 이 같은 폐해를 바로잡아보겠다고 주무부처가 직접 나선 것이다.

법이라는 게 딱 한 문구로 규정하기는 힘들다. 상황에 따라, 때로는 지역에 따라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 보니 시행령과 규칙, 그리고 일선 지자체 조례 등의 하위 법규를 두고 여기에 일정 내용을 위임하고 있다. 특히 부동산은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다 보니 유독 법률적 규제가 많은 분야다. 빈 땅에 집을 짓는 것만 해도 그렇다. 도시 지역이냐 비도시 지역이냐를 따져야 하고 대지인지 임야나 논밭인지 지목도 고려해야 한다. 용도 지역까지 세세하게 나눠져 있고 심지어 문화재 보호구역이나 군사보호 구역에서는 멀쩡한 땅조차 개발을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워낙 법이 복잡하다 보니 법규만 잘 알아도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조례에도 없는 규제에 재건축 난항

그런데 요즘 서울 강남권 재건축 단지 주민들은 법규가 아닌 이른바 지자체의 '정책 방침'이라는 엉뚱한 규제에 맞닥뜨리고 있다. 법이 복잡하다 보니 비용을 들여 외부 용역업체에까지 의뢰해 겨우 사업계획을 마련했는데 난데없이 법규에도 없던 방침이라는 게 사업의 앞길을 가로막고 섰다. 시가 직접 만든 조례는 온데간데 없고 느닷없이 '기존 소형주택의 50%를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방침이 흘러나온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 문제 없던 사업계획안에 대해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지으면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으니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있을까 싶다. 그렇다고 이 잣대가 명쾌한 것도 아니다. 꾸준히 서울시와 자문기구인 도시계획위원회 관계자를 통해 '말'이 흘러나오고 있지만 공식화된 적도 없다. 뭔가 기준이 있기는 한 것 같은데 도대체 실체가 불분명하다. 누구도 그런 규정을 공문으로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답답한 마음에 주민들은 시청 앞 광장에 모여 머리에 띠도 두르고 소리도 질러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대답 없는 메아리뿐이다.

이 정도면 좋으련만 서울시는 느닷없이 한강시민공원에 시민들을 위한 텃밭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한바탕 논란까지 불러일으켰다.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가 명백한 '하천법'위반이라며 시의 행위에 제동을 걸자 "텃밭에는 친환경 유기농 공법이 적용돼 하천 오염의 문제가 없다"며 "정부의 행정처분을 철회해달라"고 요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시가 이 계획을 백지화하고 한발 물러서기는 했지만 서울시가 보인 일련의 행보는 우려스럽기만 하다.



텃밭을 둘러싼 서울시의 주장을 되새겨 보면 "법을 어겨 도로를 무단횡단해도 사고 안 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와 비슷하게 들린다. 그런 논리라면 텃밭뿐일까. 오염원을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공장 건립'도 가능할 것 같다. 오죽하면 환경단체까지 서울시의 한강변 텃밭계획에 대해 '법 위에 군림하는 서울시'라며 감사원에 감사청구까지 요구했을 정도다.

정치적 의미보단 행정기관장 역할을

스스로 만든 법규는 뒷전인 채 소형을 더 짓지 않으면 재건축을 막겠다고 나서는가 하면, 대놓고 법을 어기겠으니 허용해달라는 지자체를 보며 시민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서울시장이 갖는 정치적 의미는 남다르다. 특히 민선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역대 서울시장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잠재적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는 한다. 하지만 정치적 의미가 어떻든 공식적으로 서울시장은 정치인 이전에 행정기관장이다. 행정기관이 법을 무시한다면 누가 법을 지키고 존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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