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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은 집 없이 떠돌고 경제는 위축됐는데 정부는 무능했다. 오늘과 흡사하지만 현재의 이야기는 아니다. 대한민국 최초 경제일간지인 서울경제신문이 정확히 55년 전인 지난 1960년 8월1일자 창간 지면을 통해 들여다본 당시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반세기 넘도록 대한민국 민생 딜레마는 무엇하나 시원하게 풀리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창간사를 통해 서울경제신문이 던진 첫 일성은 '국민경제의 옹호자'라는 각오였다.
서울경제신문은 이날 4개 면에 걸쳐 통렬한 고언을 담아냈다. 무엇보다 주택대란 문제를 꼬집었다. 창간 1면의 '경제백서' 시리즈를 통해서였다. 시리즈는 "삶과 활동의 터전이 없어 유랑의 발목을 저는 가엾은 '한국의 유목민'이 서울시에만도 75만여명"이라며 "이들은 당국이 거듭 다짐하는 '주택난 해소책'을 무상(無上·더할 나위 없음)의 복음으로 삼아 '집 없는 슬픔'을 달래며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당국의 시책은 졸렬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제언이 담겼다.
서울경제신문은 단순한 주택통계 나열에 그치지 않고 발로 뛰어 현장의 소리를 전했다. 바로 '서민들은 소형주택을 바란다…A15형은 그림의 떡'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4면 기사였다. 해당 기사는 "키보다 낮은 천장의 무수한 움막집, 오십만여 세대를 헤아리는 셋방살이의 서울시민들, 교외 유휴지를 찾아 아우성치는 무허가 판잣집의 사태, 군소도시 주위에 난립한 성냥갑 같은 하상부락(河床部落) 등 어느 모로 보나 자랑할 만한 것은 못 된다"며 양적·질적 주택난의 실태를 파헤쳤다. 또한 "우리나라의 주거표준 건설평수는 15평으로 생각돼왔다"며 "그러나 시가 200만원을 훨씬 상회하는 15평짜리 '국민주택'이란 실상 영세 봉급 생활자들에게는 바라볼 수 없는 그림의 떡"이라고 꾸지람했다. 이는 정부 정책에 대해 "크고 화려한 것 따질 것 없다. 보다 쓸모 있게 많이 지어야"라는 제언이었다.
사회의 그늘을 비추는 내용도 있었다. 그해 4·19혁명에서 투사로 활약했음에도 경찰 방망이 등에 정신적·육체적 부상을 입은 채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민주화 운동가들의 아픔을 밀착 보도한 것이다. '하얀 정신병원…4월의 사자들'이라는 제목으로 3면에 실린 이 기사는 정신이상자 취급을 당하며 병실에 감금된 희생자들이 성의 없는 치료를 받은 채 방치되다 사회에서 잊혀지고 있음을 우려했다.
서울경제신문은 창간사에서 "경제지란 흔히 업계지라는 오인을 받기 쉬운 터"라며 "업계만을 위하는 신문이 될 수 없다"고 못 박아 오늘날에도 저널리즘의 원칙을 곱씹게 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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