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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벙어리 냉가슴

김형기 <산업부장>

“벙어리 냉가슴이지, 뭐.”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한 ‘8ㆍ31 부동산종합대책’이 발표된 후 만났던 한 기업인의 반응이다. “나라 전체가 강남에서 시작한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고 난리가 났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정부가 수행하는 ‘투기와의 전쟁’만을 지켜봤다. 워낙 화급한 사안이어서 웬만한 환자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모습이다. 이게 벌써 석달이 넘었다. 몸살감기나 복통쯤으로는 ‘아야’ 소리 한마디 하기 어렵다.” ‘요즘 좀 어떠냐’는 기자의 의례적인 인사말에 시큰둥한 표정과 함께 돌아온 답변의 대강이다. “주간 단위로만 체크해도 환율 변화나 국제유가 변동폭이 얼마나 빨리 기업 실적에 반영되는지 알 수 있다”는 그는 “(부동산 투기라는) 급한 불부터 끄자는데 ‘나도 죽을 맛’이라고 아무리 투정해봤자 누가 귀 기울여 주겠느냐”고 말했다. 최근 주요 대기업들의 상반기 경영실적을 토대로 올해 경영실적을 예상한 언론보도에서 연간 조단위 순이익을 올리는 ‘1조클럽 기업’들의 수가 올해는 지난해보다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미 달러화 대비 원화가치 강세와 국제유가 상승으로 인한 원가부담 등으로 개별 기업 단위로도 일부 기업들은 올해 경영실적이 지난해의 절반 정도 수준에 만족해야 할 것으로 전망됐다. ‘투기와의 전쟁’과 ‘기업 경영실적 악화’는 별개의 차원으로 보여지겠지만 서로 연결되는 통로가 의외로 많다. 정부 최우선 현안은 당연히 투기와의 전쟁이다. 우선순위를 바꿀 핫이슈는 없었다. 국제원유가가 배럴당 70달러를 육박해도 위정자들 가운데 놀라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원ㆍ달러 환율이 움직여도 아직은 눈길을 끌지 못한다. 수출 주력이자, 내수경기의 주축인 현대차와 기아차의 파업마저도 관심권에서 밀려났다. 해당 기업과 협력 업체들이야 애가 타겠지만 투기와의 전쟁 때문에 누구 하나 나서서 입을 열지 못했다. “애정이 식은 것인지, 관심이 사라진 것인지. 아무튼 투기와의 전쟁 덕분에 X 파일 소동과 두산가 형제 싸움으로 기업을 싸늘하게 바라보던 눈길이 한결 덜해졌다.” 굳이 따지자면 얻은 것도 있다며 그가 덧붙인 말이다. 정부의 8ㆍ31조치로 강남 집값 폭등 문제나 부동산 투기 광풍을 진정시키는 데는 성공한 모습이다. 단기적으로야 전셋값 상승 등 회복 과정에서 겪어야 할 순차적인 증상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이 정도는 머지않아 가라앉을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기업인들이 그동안 겪어야 했던 마음고생도 조만간 끝날 것이다. 적어도 환율변동의 위험성이나 고유가에 대한 부담, 무절제한 파업행위 등에 대해 위정자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할 것 아니겠는가. 특히 추석이 다가오고 연말이 가까워오면 일자리를 얻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 우리 젊은이들의 실업 문제가 다시 수면위로 떠오를 것이다. 이 경우 기업들의 역할이 새삼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렇게 되지 않겠냐는 순진한 예상에 대해 그는 여전히 ‘글쎄’라는 반응이었다. “투기와의 전쟁이 끝나면 다음에는 기업들의 ‘복통’을 치료해서 경기회복에 적극적으로 나서줘야 하는데 청와대가 의지를 갖고 시작한 ‘대연정’에 순위가 또 밀렸다. 아무래도 올해 장사는 대충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재미없는 소리 그만하자’고 손사래 치는 그는 분명히 한동안 더 냉가슴을 앓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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