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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역사는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가 있기 전과 있고 난 후로 나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통은 '만종'이나 '이삭 줍는 여인들' 같은 목가적 분위기의 밀레 그림을 먼저 떠올리지만 그의 작품에는 서정성 이상의 위대함이 있다.
밀레는 미술에서의 모더니즘(Modernism·근대주의) 시대를 연 중요한 인물로 평가된다. 중세 유럽 미술의 전통은 르네상스 이후 400년 이상 한결같았다. 고대 그리스·로마를 그리워하며 고전을 지향했고 성서와 신화, 역사를 묘사하는 일이 미술의 가장 큰 역할이자 미덕이었다. 그 오랜 전통을 깬 이가 바로 19세기의 밀레였고, 그를 주축으로 한 바르비종(Barbizon)화파였다. 밀레는 '씨 뿌리는 사람'이나 '양치기 소녀' 같은 작품에서 보여주듯 평범한 농민이나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인물을 그림 한가운데 커다랗게 배치해 영웅처럼 그렸다. 이는 파격이자 도발이었고, 살롱전을 비롯한 당시 기성 미술계는 그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미술사는 그가 인간을 그림의 주체로, 평범한 일상을 주제로 열어줬다는 점을 높이 받들고 있다.
이전의 전통적 그림들은 인물을 실제보다 훨씬 더 근사하게, 이상적으로 표현하고 한치 흐트러짐 없는 완벽함을 추구한 것과 달리 밀레는 눈에 보이는 사실적 현상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다. 때문에 그는 '사실주의'에 속한다. 밀레는 '감자 심는 사람들'의 농부가 땅의 추위를 견디기 위해 신발 안에 쑤셔 넣은 지푸라기나, 고된 노동에 '씨 뿌리는 사람'의 얼굴이 일그러진 것도 결코 미화하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 그렸다.
또한 밀레는 작업실에 앉아 그림 그리던 화가들을 밖으로, 야외로 나가게 이끌었다. 콜레라와 정치적 혼란을 피해 간 것이기는 했으나, 농촌마을인 바르비종으로 이주한 밀레는 농민들 가까이서 그들의 삶을 직접 관찰해 화폭에 옮겼다. 1872년작 '그늘에 앉은 양치기 소녀'에는 나뭇잎 사이로 들어온 햇빛과 빛그늘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눈에 보이는 빛의 효과를 최대한 사실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태도는 밀레 뿐 아니라 바르비종파 전체에 확산됐고, 이들의 야외작업(플레뇌리즘)은 인상주의 미술을 탄생시키는 결정적인 작업방식이 됐다. 바르비종파는 배경에 불과하던 자연 풍광을 '풍경화'라는 독립 장르로 처음 만들었다. 또 모네와 반 고흐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같은 소재를 두고 빛의 효과가 달라지는 시간대별로 여러 점씩 그린 것도 밀레가 먼저였다.
오는 5월 10일까지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소마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에 '밀레, 모더니즘의 탄생'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전시 총감독인 서순주 박사는 "서양미술사는 밀레 이전과 이후로 양분될 수 있으리만치 회화작업에서 소재제한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그의 업적은 지대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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