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2%대에 그칠 것으로 예측돼 한국 경제를 끌던 엔진이 식었다는 평가가 많다. 더욱이 미국이나 유럽 등의 경제상황은 좋지 않고 중국의 성장도 둔화됐다. 대외환경이 그만큼 좋지 않다는 얘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수마저 위축돼 있다. 경기침체를 우려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은 탓이다. 반년 이상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대를 맴돌고 있다. '저성장ㆍ저물가'의 디플레이션을 우려할 정도다. 이 때문인지 중공업과 반도체ㆍ자동차가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이끌었던 것처럼 제2의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산업과 산업, 산업과 문화의 융합인 창조경제를 강조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창조경제가 돌파구라는 얘기다. 다만 산업 융합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창조경제'가 과연 무엇인지, 실체는 있는 것인지 논란도 뜨겁다. 이런 논란이 커질수록 주목을 받는 곳이 산업연구원이다. 국내에서 산업연구만을 전문으로 하는 유일한 국책연구기관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취임한 김도훈(56ㆍ사진) 신임 산업연구원장도 11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창조경제를 국정과제로 제시한 것은 시의적절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창조경제가 자칫하다가는 허상으로 흐를 수 있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중소기업 지원에 대해서는 일방통행 식의 지원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최근의 엔저 상황을 놓고서는 "국내 대기업에 큰 위협은 되지 못한다"고 밝힌 뒤 "대기업 정책은 정부가 발목만 잡지 않으면 된다"고 강조했다.
"기존 산업과 이질적인 요소 결합 통해 창조경제 아이디어 찾을 것"
김 원장은 모두가 앵무새처럼 떠드는 창조경제의 허상을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창의성 없이 오더를 받아서 만들어내는 게 창조경제가 아닙니다. 정보통신기술(ICT)과 과학기술의 결합도 창의성이 결여됐다면 옛날 것입니다." 창조경제의 핵심을 꿰뚫고 산업구조 전반의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창조경제가 보다 내실 있는 성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욕먹을 각오도 다부지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관치 주도 창조경제의 지나친 성과주의를 경계한 발언이다. 그는 "성과에 조급증을 가지면 창조경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며 "외부의 비판을 감수하더라도 창조경제는 멀리 보고 중장기적으로 가져가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창조경제에 맞도록 산업연구원의 역할에 변화를 주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이질적인 요소와 산업의 결합'을 위해 책상물림 이미지가 강한 연구원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다른 문화들을 과감하게 받아들이면서 국내 산업계에 정말 창조적인 아이디어들을 던져 볼 요량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미래산업연구실을 만들었습니다. 산업연구원이 그간 잘 다루지 않던 인문학이나 서비스산업 등에 관해서도 폭넓게 흡수해보자는 취지입니다." 김 원장은 미래산업연구실이 연구원 박사들끼리 연구하고 그럴 듯한 보고서나 내놓는 곳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바깥의 다양한 사람들과 직접 접촉하며 여러 가지 주제로 포럼을 열면서 창의적인 요소를 받아들이고 정해진 것이 없는 새로운 연구를 하게 할 것"이라며 "연구원의 연구 칸막이를 없애는 첨병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일방통행 식 중소기업 지원은 위험… 창의성 발현할 수 있게 성과 연동 지원해야"… "대기업 정책과 관련해서는 정부가 발목만 잡지 않으면 돼"
김 원장은 새 정부의 또 다른 화두인 산업구조 문제에 대해서는 일방통행 식의 중소기업 지원을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현 시점에서 중소ㆍ중견ㆍ벤처기업이 화두로 나오는 것은 맞지만 성과에 연동하지 않는 지원 시스템은 기업 보호라는 장막 속에 주저앉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초창기 우리 경제는 수출 잘하는 기업에 무역 지원을 해주고 투자여력이 있는 기업에 금융지원을 해주는 등 성과에 연동한 지원으로 규모를 이만큼 키웠습니다. 앞으로는 창의력을 갖고 그것을 발현하려고 애쓰는 중소기업을 정부가 찾아내 지원해야 합니다." 산업구조가 주제가 되자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대기업 정책으로 이어졌다. "대기업 정책과 관련해서는 정부가 발목만 잡지 않으면 됩니다." 명료했다. 그는 "대기업은 이제 정부에 큰 정책적 혜택을 바라지도 않는다"며 "잘 뛸 수 있도록 놓아주기만 해도 성과를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아베노믹스로 시작된 엔저 문제에 대해서도 국내 대기업들의 경쟁력을 생각하면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김 원장은 "최근 일본 기업들의 지표가 다소 좋아진 것은 그동안 너무 헤맸던 것에 대한 기저 효과도 있다"며 "자동차나 전자 등 우리 주력 산업들의 경쟁력이 설사 다소 저하된다고 해도 그것은 현대자동차나 삼성이 헤쳐나가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산업 많이 출몰할 수 있는 곳에 규제개혁해야…기득권 카르텔 깨야 가능"
김 원장은 다만 전반적인 기업규제 개선 문제에 관련해서는 "정부가 새로운 영역의 산업들이 많이 출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적극적인 규제개혁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규제학회 회장이기도 한 그는 "이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가 융합이라는 테마를 갖고 뭘 해보려고 해도 규제에 묶여 있는 것이 너무 많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는 딱딱한 틀을 한번 바꿔봐야 하는 대표적인 분야로 의료시장을 꼽았다. "의료와 IT를 접목하는 u헬스가 안 되는 것은 의사들이 공공성이라는 부분만을 강조하면서 (규제개혁을) 너무 강하게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어 "의료ㆍ법률시장 등 힘센 집단은 자기들끼리는 규제를 조금씩 열면서도 이질적인 집단이 오는 데 대해서는 철저히 문이 닫혀 있는 데 그것을 얼마나 열 수 있느냐에 산업 융합을 통한 창조경제의 성패가 달렸다"고 말했다. 공공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기득권의 카르텔을 깨야 새로운 산업이 열릴 수 있다는 말이다. 그는 "창조경제를 이끌 정부 규제개혁의 핵심 분야는 바로 그런 부분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어적 통상에서 공격적 통상으로 전환할 때…한중일 FTA 구심점으로 아시아 빨아들여야"
국내 대표적 통상 전문가로 꼽히는 그는 새 정부의 통상정책 방향과 관련해 '공격적 통상'을 주문했다. 그는 "우리 산업은 이제 상대방 시장을 열어서 쳐들어가야 한다"고도 말했다. 지금까지 미국,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으면서 방어에 치중해온 국내 통상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꿀 때라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김 원장은 새 정부의 통상정책이 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된 것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대부분의 선진국들과 FTA를 맺으며 외교부 주도로 방어적 자세를 취해야 하는 어려운 고비는 다 넘겼다"며 "이제는 공세적 입장으로 바뀌어야 하는 시기이고 산업부가 이해관계 주판을 잘 맞춰서 새로운 시장을 뚫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정부에서 체결된 한국ㆍ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한국ㆍ인도 FTA를 대표적으로 실패한 FTA로 규정했다. 시장을 제대로 열지도 못하면서 FTA 체결 성과 자체에만 의미를 뒀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아세안과는 주요 품목을 모두 민간품목으로 제외했고 인도는 관세 즉시철폐 상품은 아예 찾아보기도 힘들다"며 "FTA를 하는 의의가 없다면 중간에 그만둘 각오를 하더라도 그렇게 FTA를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최근 통상당국이 추진하고 있는 인도네시아ㆍ베트남과의 양자 FTA에 대해서는 개별상품 관세 인하보다도 '시스템 수출'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관세 인하 혜택이 없어도) 현대자동차는 필요하면 현지에 가서 생산도 다 할 수 있다"며 "단순히 상품관세 인하가 아니라 개발 노하우와 인프라, 자원개발 등 다양한 시스템을 한꺼번에 묶어서 수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정부의 공격적 통상정책을 지원할 수 있는 조직인 산업통상분석실을 취임 후 연구원 내에 신설했다. 그는 "그동안 연구원이 FTA의 산업효과 분석에 주력했다면 앞으로는 우리 산업의 이해와 경쟁력을 잘 접목시킨 통상전략을 찾아보는 역할로 확대해볼 것"이라고 포부도 밝혔다.
한미FTA 전략 제시한 통상 전문가… "산업정책 선도 본연의 모습 찾겠다" ■ 김도훈 원장은 윤홍우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