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꾸로'의 작가입니다. 이불 속에서도 거꾸로 보고 거꾸로 생각하고 거꾸로 살았죠. '거꾸로'의 의미는 기존의 관념을 뒤바꾸는 것입니다. 캔버스에 그림 그리고 나무·돌 깎는 조각들 속에서 나는 기존과 다른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대표작인 '고드렛돌'은 박물관에서 발 짜는 고드렛돌(발·돗자리를 엮을 때 날을 감아서 늘어뜨리는 작은 돌)을 본 뒤 돌멩이가 딱딱하고 무겁다는 기존 관념과 반대로 물렁물렁한 돌멩이를 만들어 매단 것이었죠."
한국 최초의 아방가르드(실험미술) 미술가로 꼽히는 이승택(82·사진)이 7일 서울 삼청로 갤러리현대 본관에서 열리는 개인전을 앞두고 이같이 말했다. 작가가 언급한 '고드렛돌'은 '한국적인 것의 현대화'와 더불어 해외 큐레이터들을 감탄하게 했고 연작 첫 번째 작품은 영국 국립미술관인 테이트모던에서 주세페 페노네 등 세계적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상설전시 중이다.
작가는 "현대미술은 고도의 지적유희인데도 우리 작가들은 고민하기보다 세계적 미술사조에 편승하거나 매몰되기도 한다"고 지적하며 "나는 1950년대 말부터 기존 사조와 무관한 독자성을 갖고 걸어왔고 그런 실험성이 '유럽 현대미술사의 주류를 능가했다'는 평가까지 받으며 요즘 새삼 주목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피카소가 형태의 마법으로 세계 미술사에 남았다면 나의 작품은 형태 너머에 있다"고 말하는 작가는 인체를 끈으로 묶는 출품작이 가학성을 이유로 국전에서 거부당하기도 했고 캔버스를 끈으로 묶는 행위로 '새로운 그림'을 만들거나 '1좌대 1조각'의 관례를 깨고 좌대 하나에 조각 둘을 올리는 등의 파격을 시도했다. 이미 40여년 전, 모노크롬(단색화) 아니면 극사실주의가 화단을 지배하던 시절의 일이다.
이렇게 1960년대에 찬밥이던 그의 작품이 현재 미술품 수집가들의 '핫아이템'이 됐다. 지난 2009년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수상 이후 재인식·재평가 분위기가 높아졌다. 세계 정상급 아트페어인 런던 프리즈(15~19일)가 특별전 격인 '프리즈 마스터'와 '프리즈 조각공원' 전시에 이승택을 초대했다. 함경남도 고원 출신 실향민인 작가의 대표작인 반전 메시지의 '삐라'를 담은 6~7m 대형 풍선 작품들이 선보일 예정이다. 오는 11월9일까지 열리는 이번 갤러리현대 개인전은 1·2층의 설치작품 외에 작가의 과거 퍼포먼스 행적을 확인할 수 있는 지하 영상작품이 특히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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