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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187> 밥집에선 예의 말아 먹어도 되나요?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부부가 식당 한켠에 자리 잡았다. 평범해 보이는 부부가 평범하지 않은 행동으로 시선을 사로잡은건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아서다. “그러니까 그게 맞냐고!” 한 남자 손님의 높은 언성에 주변의 눈길이 쏠렸다. 허겁지겁 뛰어 나온 주인이 “죄송합니다. 아직 얘가 뭘 잘 몰라서요”라며 사과하면서 소동은 일단락됐다. 얼마 전 기자가 접한 이런 광경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가족들과 외식이라도 할라치면 “서비스가 이게 뭐냐, 직원 교육 똑바로 하시라”고 따끔하게 한마디씩 하는 고객을 이따금 볼 수 있다. 물론 식당 측의 부적절하고 미숙한 대응으로 인해 마음이 상했다면 ‘따끔한 한마디’는 손님의 당연한 권리일 것이다. 하지만 고객의 모든 불만이 종업원의 실수에서 비롯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서비스업 종사자는 을이고 손님은 무한 갑인 분위기 탓에 속만 끓이는 직원들이 많다. 중년 부부가 불평을 늘어놓은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사실 사건의 발단은 손님의

이었다. 음식을 나르던 아르바이트생에게 중년 손님이 “미국으로 유학 간 우리 딸이 생각난다”라며 말을 걸었다. 해당 종업원의 표현대로라면 ‘치근덕댄건 아니었지만 개인적인 정보를 물어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성의 있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남자 손님이 갑자기 반말을 시작하며 화를 냈다는 것이다. 퉁명스러운 대답에 서비스가 형편없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리라.

다시 가고 싶은 식당,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식당을 가르는 기준이 음식 맛만은 아니다. 오히려 분위기, 종업원의 태도 등 그곳에서의 경험이 어떠한가에 대한 기억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음식점 주인이 사과를 한 이유는 명확하다. 빨리 기분을 풀어줘 손님이 최악의 식당이라고 기억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다짜고짜 반말, ‘딸 같아서’ 스스럼없이 개인정보를 묻는 건 분명 예의 없는 행동이다.



중국 고대 사상가 순자의 예의에 대한 생각은 이렇다. 그는 <부국> 편에서 “예라는 것은 귀하고 천한 등급을 매겨 주고 나이 많은 이와 적은 이의 차등이 있게 하고 가난하고 부유하거나 신분이 가볍고 무거움에 따라 모두 어울리는 대우를 하는 것”이라 적었다. 각자에게 맞는 대우를 하는 게 예를 지키는 일이라는 이야기다. 순자의 관점에서 보면 화를 낸 손님은 ‘손님으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했다, 직원이 예의가 없다’고 여겼을 수 있다. 게다가 나이도 많으니 일종의 연장자 대접을 제대로 하지 않는 상황에 화가 뻗쳤을 것이다. 그러나 ‘손님은 왕’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고 해서 ‘직원은 막 대해도 되는 하인 또는 아랫사람’이라 여겨선 안 된다. 식당에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각오나 다짐일 뿐이다.

시대가 바뀌었다. 직원의 의무와 태도를 지적하는 손님에게도 분명 요구되는 예의가 있다. 밥집 손님으로 갔으면 손님답게 행동하는 법이라도 따로 가르쳐야 하는 걸까. 단돈 몇 천원으로 왕 대접을 바라다니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대체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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