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학생 B씨는 버스 안에서 이어폰을 끼고 작은 휴대폰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일이 많다. 손에 땀을 쥐며 프로야구 보는 걸 즐기기 때문이다. B씨에게 스마트폰은 언제 어디서나 함께하는 친구와 같다. 이처럼 스마트 미디어의 발전으로 방송을 볼 수 있는 시간적·공간적 제약이 사라졌다. 새로운 TV 플랫폼이 속속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거실을 벗어나 침대 혹은 버스 등 언제 어디서나 방송을 본다.
TV 소비의 축이 거실에서 모바일로 옮겨가면서 시청자도 가족이 아닌 개인이 중심인 시대가 됐다. 특히 1~2인 가구의 확산으로 시간과 장소의 구애 없이 본인이 원하는 콘텐츠를 선택해 시청하는 패턴이 더욱 두드러지는 추세다. 시청자들은 더 이상 거실에 모여 있지 않고 곳곳에 '숨어 있는' 것이다.
다채널·다매체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고정형 TV로 본방송을 본다는 개념이 약해지고 있다. 공중파에서 만든 드라마라는 이유로 '황금 시청률'을 보장받기도 힘들게 됐다. 뒤집어보면 조사기관이 발표하는 시청률보다 체감 시청률이 높은 양질의 프로그램 제공사업자(PP)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미 많은 젊은이들은 '본방 사수' 대신 '다시 보기' '몰아 보기' 등을 선호한다. 최근 한 시청률 조사기관에서 발표한 미디어 이용 행태조사 결과에서도 각 스크린별 평균 이용시간 1위가 TV는 지상파 방송사, PC는 포털 사이트, 모바일은 케이블 채널로 제각각이었다.
그러나 현행 시청률 조사 방법은 분화된 시청 행위를 고루 측정하지 못한다. 실시간 시청률뿐만 아니라 다시 보기나 녹화, N스크린 서비스 등을 포함한 통합 시청률 지표 채택이 필요한 이유다. 미국은 이미 닐슨을 주축으로 시청률 산정 방식이 바뀌고 있다. 아이패드 등 태블릿이나 X박스 등의 게임기 등은 물론 넷플릭스·훌루 등 온라인영상서비스(OTT)도 추가할 예정이다. 노르웨이·덴마크·스위스 등 서유럽 국가도 신개념 통합 시청률 측정 방식 도입을 검토 중이다. 우리 정부도 스마트 미디어를 포함한 TV 통합 시청률 지표를 마련한다고 하니 환영할 일이다. 새롭게 마련될 통합 시청률은 저평가된 PP나 수익을 낼 수 없었던 OTT 사업자들이 다시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광고주도 보다 합리적인 선택이 가능해진다. 결국 현실과 동떨어진 전통적 방식의 시청률 조사를 개선하는 것이 왜곡돼 있는 방송 시장 질서를 바로 세우는 단초가 된다.
모든 방송사업자가 꿈꿨던 'TV Everywhere'의 세상이 역설적으로 TV의 전통적 개념이 사라지는 시점에 펼쳐졌다. 사업자들이 할 일 중 하나는 각자의 영역을 구분 짓지 않고 숨어 있는 시청자를 찾아내 신뢰도 있는 시청률 조사 체계를 만드는 데 동참하는 것이다. 방송업계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거부하고 적응하지 않으면 생존이 위태로울 수 있다.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미디어는 늘 시청자의 변화와 함께 진보해왔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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