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회장과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이 보여준 기업가정신은 이제 막 태동기인 중국의 기업인들에게 벤치마킹 모델이자 교재가 되고 있습니다."
류쉬에(사진) 중국 베이징대 광화관리학원 부원장은 "미래 사업을 선택하고 집중한 한국의 기업가정신은 일본을 앞지를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류 부원장은 "일본 기업은 위기 때 미래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분산투자를 했지만 한국은 빠른 의사결정과 집중투자로 효과를 발휘했다"고 강조했다. 대기업 오너 체제가 위기 때 빛을 발하면서 오늘날 삼성ㆍ현대차와 같은 글로벌 기업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다는 설명이다.
류 부원장은 29~30일 이틀간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리는 '서울포럼 2013'을 앞두고 서울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의 기업가정신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류 부원장은 서울포럼 둘째 날 '창조' 세션에서 '중국과 한국의 기업가정신'에 대해 발표할 예정이다.
특히 그는 정 회장과 이 회장에 대해 기업 핵심 리더의 결정이 기업을 어떻게 발전시키는가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사례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주영 회장의 그룹 창업 및 성장 과정에서의 침착함이나 결단력, 과감한 도전정신에 대해 감탄했다"며 "대북 사업에 대한 그의 열정은 민족주의와 결부되며 무모할 정도였지만 도전하는 기업가정신으로 본다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고 말했다.
류 부원장은 실제 투자결정 위험을 평가하는 수업시간에 정 회장의 소떼방북과 북한을 통과하는 동북아 철도 프로젝트를 예를 들어 학생들과 토론하기도 했다. 류 부원장은 "이론적으로는 북한 투자가 무모할 수 있지만 역사를 바꾸는 프런티어 정신에서는 정 회장의 시도를 높이 평가했다"고 말했다.
류 부원장은 삼성과 관련해서도 이병철 창업주와 이건희 삼성 회장이 2대에 걸쳐 새로운 사업에 대한 도전정신과 빠른 의사결정으로 오늘날 애플을 제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게 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10년 전 중국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삼성 휴대폰은 노키아ㆍ모토로라 등에 뒤처지고 중국 TCL에는 앞서는 정도의 브랜드였지만 지금은 애플보다도 더 뛰어난 브랜드 파워를 과시하고 있다"며 "리더의 정확하고 빠른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말했다.
다만 류 부원장은 중국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아쉬운 점을 묻는 질문에 현대차의 고급화 전략을 꼽았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벤츠ㆍBMW 등이 장악하고 있는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는 것이다. 류 부원장은 중국 초보 운전자들은 중국의 지리ㆍ비야디를, 화이트칼라는 일본의 마쓰다ㆍ도요타ㆍ혼다 또는 현대차를 선택하고 부유층은 벤츠나 BMW를 택한다며 현대차가 아직 브랜드 이미지에서는 일본 차보다 한단계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류 부원장은 지금이 현대차가 이러한 브랜드 이미지를 역전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지적했다. 그는 "반일 감정이 중국 내에서 계속 악화되며 고위층에서는 일본 차를 거부하고 있다"며 "이 시기를 현대차가 돌파구로 삼아 일본 자동차 브랜드를 누르고 벤츠ㆍBMW 등의 바로 밑에까지 따라붙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류 부원장은 "당장 독일산 차의 브랜드 이미지를 추월하기는 어렵지만 지속적으로 고급화하지 않으면 치고 올라오는 중국산 브랜드들의 공격에 중국 시장에서도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한편 류 부원장은 중국의 기업가정신에 대해 "계획경제에서 개방경제로 바뀌는 과정에서 억제ㆍ개방ㆍ발육ㆍ성장의 단계를 빠르게 거쳐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지금은 발육과 성장의 단계를 동시에 거치고 있다"며 "공동의 이익과 사적 이익이 충돌과 협력을 하는 형태로 발전하는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류 부원장은 이번 포럼에서 과거 억압 받던 중국의 기업가정신이 어떤 과정을 거쳐 성장해왔는지를 발표할 예정이다.
◇약력
▲1962년 랴오닝 출생
▲1985년 중국 선양대 약학대 학사
▲1988년 베이징대 경제학 석사
▲1999년 베이징대 광화관리학원 박사
▲2000년 선양약학대 경영대 학장
▲현 베이징대 광화관리학원 부원장 및 전략연구소 주임
◇광화관리학원은
설립된 지 20년이 넘는 중국 내 최고의 경영대학으로 이 대학 교수들은 중국 정부 경제정책 결정에 핵심 브레인 역할을 하고 있다. 리이닝 명예원장은 리커창 총리가 베이징대에서 경제학 석ㆍ박사를 받을 당시 지도교수였고 자오쯔양 전 공산당 총서기의 경제 브레인으로 국유기업 민영화 소유제 개혁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데다 인맥도 탄탄해 광화관리학원 졸업은 베이징대 학생들 사이에서 취업 보증수표로 통한다. 한때 한국에서는 모 재벌의 딸이 광화관리학원에 다닌 것으로 알려지며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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