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쌍방이 실착을 주고받아서 형세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흑89가 놓인 시점에서 계가를 해보던 김성룡이 말했다.
"어쩌면 반집승부가 될지도 모르겠어. 아주 미세한 바둑이야."(김성룡)
"그렇다면 끝내기가 강한 박영훈이 유리하다는 얘기가 되잖아."(윤성현)
이세돌도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는 박영훈의 백90을 보자 흑91로 하나 활용해 놓고는 흑93이라는 무식한 공격으로 나갔다.
"뭐야. 자기쪽도 약한 처지에 일직선 공격이라니. 이건 너무 심한 것 같다."(김성룡)
"후배가 백90으로 모자를 떠억 씌우니까 자존심이 좀 상한 것 같아."(윤성현)
"자존심은 아까부터 상해 있었을 거야. 우상귀에서 맥점에 정통으로 걸려들었을 때부터 심리적으로 내상을 많이 입었을 거라고 봐야지."(서봉수)
검토실의 진단은 정확했다. 흑93은 과수였다. 참고도1의 흑1로 백스텝을 밟는 것이 정수였던 것이다. 이것이었으면 장기전이었다.
흑99까지는 외길수순. 박영훈이 100으로 끊은 것도 최선이었다. 이 수로 참고도2의 백1에 꼬부리는 것은 자기의 무덤을 파는 결과가 될 뿐이다. 흑14까지 되고 보면 수상전은 흑이 한 수 빠르며 이것으로 백은 돌을 던져야 한다.
"도대체 결과가 어떻게 되는 걸까? 철한아. 이런 수상전은 네가 전문이잖아. 말 좀 해봐."(김성룡)
"패가 되는 것 같아요."(최철한)
"그럼 또 절묘한 타협이 이루어지겠군."(김성룡)
"아뇨. 흑이 망하게 될 것 같아요."(최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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