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장동의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은 외국 관광객들에게 다소 낯선 명칭이다.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워커힐(Walker Hill)'이라는 지명이 덧붙여졌고 우리에게 워커힐로 더 유명한 탓이다. '워커의 언덕'을 뜻하는 워커힐은 한국 전쟁의 영웅 월턴 워커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명명된 것이다. 워커 장군은 6·25전쟁 당시 미8군 사령관으로 낙동강 방어전선(일명 워커라인)을 지켜냈고 외롭게 한반도 사수를 주장했던 강인한 군인이었다. 지금도 워커힐 본관 정문에는 "장군만이 홀로 한반도 고수를 주장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공산화를 방지했다"며 공덕을 기리는 비문이 있다.
워커 장군은 낙동강 전투에서 "지키느냐 아니면 죽느냐(stand or die)"라며 배수의 진을 쳤고 결국 전세를 역전시키고야 말았다. 하지만 워커 장군은 12월 말 일선 부대를 격려하기 위해 지프로 이동하다 아차산 근처에서 한국군 트럭과 충돌하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운명을 달리했다. 부친과 함께 참전했던 외아들 샘 워커 대위는 끝까지 싸우겠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유엔군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도쿄 사령부로 직접 불러 운구 '명령'을 내려야만 했다.
미국을 방문 중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워싱턴DC의 알링턴 국립묘지 34번 묘역에 있는 워커 장군의 비석을 찾아 한국식으로 재배(再拜)를 올렸다고 한다. 때마침 미군 참전용사들은 정전 62주년을 맞아 전사자 3만6,574명의 이름을 사흘에 걸쳐 일일이 부르는 행사를 가졌다. 노병들이 세상을 떠나면 누가 6·25를 기억하겠냐며 살아 있는 역사를 알려주고 자유를 위해 숨진 병사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였다. 워커 장군의 보좌관인 짐 하우스맨은 회고록에서 "한국은 전후 팔을 잃은 국회의원, 눈이 날아간 국방장관을 갖지 못했다"고 적었다. 우리에게는 잊힌 전쟁이지만 미국에서는 영웅을 추모하고 있으니 부끄러울 따름이다
.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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