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형은행들이 자금경색을 호소하고 있지만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당장 자금을 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의 핫머니 유입차단과 채권발행 실패로 어려움을 겪는 은행들은 자금을 더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부동산 버블과 인플레이션 우려 탓에 유동성을 무조건 공급할 수는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7일 중국 대형은행들이 단기 대출금리 상승과 외국인자금 유입 급감으로 자금난을 겪으면서 인민은행이 딜레마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WSJ는 현재 중국 은행들이 인민은행에 지준율을 낮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인민은행은 지난해 5월 지준율을 인하한 후 1년 넘게 시중 유동성을 관리하며 지준율을 건드리지 않고 있다.
중국 대형은행들의 자금경색은 중국의 명절 중 하나인 단오절 이후 6월 초부터 나타나고 있다. 은행 간 단기 대출금리인 7일물 레포금리는 17일 현재 6.85%이다. 지난 14일에는 사상 최고치인 6.9%까지 치솟기도 했다. 4월 중순 은행 간 금리가 3.2~3.4% 정도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하면 불과 두달 만에 자금조달 비용이 2배 이상으로 늘어난 셈이다.
또 이달 말까지 자기자본비율을 맞춰야 하는 은행들이 시중 유동성을 급하게 끌어 쓰는 가운데 미국의 출구전략 가능성으로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이 빠르게 빠져나간 것도 은행 자금경색의 원인 중 하나다. 여기다 지난달 외화관리국의 외국인 투기자금 단속강화 등으로 외국인 신규 자금 유입이 둔화된 것도 은행들의 돈줄을 말리고 있다. 지난달 중국 금융기관의 외화보유 증가액은 699억위안으로 4월 증가분(2,944억위안)의 23.7%에 불과했다.
은행들의 자금경색은 채권발행 실패로 이어졌다. 중국 4대 국책은행 중 하나인 농업발전은행은 전날 260억위안(약 42억달러) 규모의 채권발행을 추진했지만 77%밖에 소화하지 못했고 14일 재정부 발행 150억위안의 채권도 95억3,000만위안 발행하는 데 그쳤다.
중국 은행들은 이에 따라 인민은행이 자금경색을 해결하기 위해 조만간 지준율 인하 카드를 꺼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 4대 국영은행 중 한 곳의 관계자는 "업계 내부적으로는 수요일까지 지준율이 인하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민은행이 당장 지준율 인하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자금경색으로 은행들이 우는 소리를 하지만 인민은행은 전일 밤 유동성 회수조치의 일환으로 20억위안의 중앙은행 어음발행을 결정하는 등 유동성을 풀기는커녕 오히려 신용팽창을 억제하는 데 치중했다.
WSJ도 현재 은행 간 자금시장의 경색은 중국 정부가 2009년 이후 실시한 경기부양책으로 풀린 유동성을 흡수하는 와중에 나타난 일시적 경색일 뿐이라고 분석했다. 한 은행권 경제전문가도 "단오절에 풀릴 줄 알았던 유동성이 풀리지 않자 중국 은행들이 당황하며 은행 간 거래에서 자금의 미스매칭이 발생한 것일 뿐 전체적인 자금경색 상황은 아니다"라며 "급격히 올랐던 단기금리도 조금씩 안정세를 찾고 있고 6월 말이 지나면 예년 수준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스탠다드차타드는 서구권과 달리 중국 인민은행의 지준율 인하는 중국 정부의 거시경제 정책이 변화했다는 신호라고 지적하며 신용거품의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 자금을 풀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 정부는 경제성장 속도 둔화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밝히며 당분간 통화·재정정책 기조를 바꿀 의향이 없다는 뜻을 여러 차례 내비쳐왔다. 유동성 지표인 사회융자 총액이 지난달 1조1,900억위안으로 4월보다 30%나 줄었지만 1~5월 누적액이 지난해 동기 대비 52% 늘어난 상황이어서 중국 정부가 유동성을 흡수하는 쪽으로 정책을 유지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