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친구가 자동차부품 공장을 구자라트주와 타밀나두주 중 어느 곳에 세울까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제안서 검토에만 5~6개월의 시간을 허비한 타밀나두주와 달리 구자라트주는 제안서를 내기도 전에 적합한 공장을 미리 제시했다고 하더군요. 구자라트를 선택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죠."
인도 하리아나주 신도시인 구르가온 DLF몰에서 16일(현지시간) 만난 기업인 발라지씨가 들려준 얘기다. 인도 총선 결과 제1야당인 인도국민당(BJP)이 압승을 거둔 가운데 차기 총리가 확실시되는 나렌드라 모디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지난 2001년 이후 10년 넘게 구자라트주 총리를 지내며 관료주의를 깨는 데 성공한 모디에게 인도인들은 "굼뜬 코끼리를 빨리 움직이게 해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인도의 관료주의와 복잡한 규제장벽은 악명 높다. 16세기 무굴제국 때부터 시작된 관료제는 식민지배 시절 영국식 법·제도가 혼합됐고 독립 이후에는 '네루식 사회주의'까지 더해지면서 '라이선스 라지(licence raj·인허가 왕국)'라는 별명이 불었을 정도다. 현 중앙정부에서도 산업 분야를 책임지는 장관만 7명에 달하는 등 인도는 전세계를 통틀어 손꼽히는 관료제 실패 국가다.
역대 인도 정부는 모두 연원이 깊은 관료주의를 뿌리 뽑기 위한 시도를 했지만 실패를 거듭했다. 인도인들은 모디의 카리스마가 이 고질병을 고쳐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인디라간디국제공항 부근 드왈카 지역에서 만난 틸락씨는 "모디는 강하고 똑똑한 인물"이라며 "구자라트 시절의 경험을 살린다면 충분히 인도를 바꿔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모디와 BJP는 이번 총선 기간 관료주의 척결을 위해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차등 권한 철폐 △정책 투명성 강화 △부정부패 척결 등을 내걸었다.
인도 정치 특유의 강력한 지방자치 역시 모디가 극복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인도는 영국 식민지배에서 독립한 후 지방 왕족 등 기득권 세력 대부분이 정치인으로 변신한 까닭에 주정부 및 주의회의 영향력이 중앙정부에 못지않다. 마하라슈트라주 등 힘이 센 일부 주정부의 경우 노골적으로 중앙정부의 정책 및 지시를 거부한다. 글로벌 투자은행(IB) 크레디트스위스(CS)에 따르면 현재 인도가 추진하고 있는 대형 프로젝트 가운데 중앙정부가 집행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은 전체의 4분의1에 불과한 실정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역시 이 부분을 모디가 극복해야 할 첫 번째 과제로 꼽으면서 "(인도의 가장 열악한 인프라 부문인) 전력 분야에 있어서는 주정부의 입김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총리 모디'가 가진 권한이 생각보다 많지 않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BJP 공약집에는 중앙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에 주정부를 참여하도록 함으로써 둘 사이의 관계를 좀 더 유기적으로 만들겠다고 돼 있다.
비록 BJP 주도의 국민민주연합(NDA)이 압도적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이 자체로 모디의 개혁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당장 NDA에 속해 있는 정당 수가 28개에 달한다. 이들 군소 정당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주장하면서 모디가 향후 추진할 정책에 사사건건 발목을 잡을 경우 모디의 개혁은 좌초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고홍근 부산외대 인도어과 교수는 "인도 정치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불과 1~2석 정도에 불과한 지역 내지는 카스트제도 기반의 군소 정당이 정권을 좌지우지한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모디는 유년 시절부터 힌두근본단체인 민족의용단(RSS) 회원으로 활동했고 이번 선거 기간 "인도의 뿌리(힌두)에 대해 자신감을 갖자"며 힌두 민족주의를 전면에 내세웠다. 모디는 2002년 주 총리 시절 구자라트에서 무슬림 1,000여명이 사망한 일명 '고드라 사건'을 방관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힌두 국수주의자라는 평가까지 나오는 모디의 집권은 인도 내 종교대립을 더욱 부추겨 인도인 중 13%에 해당하는 무슬림의 입지를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대외관계에 있어서도 주변 이슬람국인 파키스탄과의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모디는 인도에서 무슬림이 유일하게 다수를 차지하는 잠무 카슈미르주를 대규모 전국 선거 캠페인의 첫 번째 지역으로 삼는 등 화해의 손길을 내밀기도 했다. 이 때문에 모디 집권 후 종교 문제로 인한 갈등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들도 다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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