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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시진핑의 표정 외교


지난주 중국 베이징에서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의 조우가 이뤄졌다.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만남이다. 수치 여사의 중국 방문은 시진핑 주석의 직접 지시에 따라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이어서 더 눈길을 끈다. 스스로 대국이라고 자처하는 중국의 지도자가 정상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치적 동반자도 아닌 외국의 야당 지도자를 이처럼 극진하게 맞은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파격적이다.

최근 시 주석의 외교는 예측을 불허하게 한다. 가까운 이웃과는 물론이고 군사·외교적 대척점에 선 상대까지 아우르는 거침없는 행보다. 외신을 통해 드러나는 그의 표정 하나하나가 화두가 될 정도다.

지난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방중에서도 그의 파격적인 행보는 외신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전통적인 미국의 우방인데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영토 갈등까지 겪고 있는 국가 총리를 베이징이 아닌 시안까지 직접 가서 맞음으로써 중국의 기존 외교 관례의 틀을 깼기 때문이다.

대일 외교에서 보여준 그의 표정은 그 자체로 외교에서 보기 드문 직설 화법이다. 지난해 11월 베이징에서 열린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 당시 중국 언론을 통해 공개한 사진에 나타난 그의 표정은 악화된 중일관계를 상징했다. 그는 싸늘하고 차가운 표정만으로 과거사 논란과 센카쿠 갈등,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문제 등으로 불편할 대로 불편해진 중국의 심기를 여과 없이 전달했다. 중국 정부가 당시 회담을 "일본 측의 요청에 의해 성사된 회견"이라고 부연 설명할 필요조차 없어 보였다.

정치·경제 분리하는 실리외교 전형

이렇다 보니 지난 4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개최된 반둥회의 당시 일본 언론이 아베 총리와 마주한 시 주석의 살짝 부드러워진 표정을 두고 '양국 관계 개선의 신호'라며 호들갑을 떨 만도 했다. 그렇다고 시 주석이 일본에 대해 시종일관 굳은 표정만 보여준 것은 아니다. 지난달 말 일본 정재계 인사 3,000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사절단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에는 예고 없이 행사장에 깜짝 등장해 일본 측 인사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환한 표정을 선물했다. 대일 외교에서 영토 등 안보와 경제 문제는 별개라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시 주석은 철저하게 실리를 추구하는 유연한 외교를 지향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은 인공섬 건설에 따른 영토분쟁으로 첨예한 갈등을 겪고 있는 남중국해 일대 국가들에 확실한 선물보따리를 풀며 경제 협력 관계를 구축해가고 있다. 4월 방문한 파키스탄에서는 460억달러의 통 큰 투자를 통해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와 파키스탄 과다르항을 연결하는 3,000㎞의 철도·도로·가스관 건설 사업인 이른바 '경제회랑' 사업을 성사시켰다. 인도와는 군사외교적 대립에도 불구하고 26억명의 거대 시장 교류를 위한 통 큰 합의를 이끌어냈다. 역시 영유권 갈등을 빚고 있는 베트남과도 적극적인 경제 협력에 나서고 있다. 정치와 외교를 철저히 분리해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실리외교의 전형이다.



이처럼 유연한 외교를 펼치고 있지만 그가 전하는 메시지에는 '모호함'이 없다. 자신이 줄 것은 무엇인지, 상대방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분명하고 명쾌하게 표현한다. 물론 이는 미국을 위협할 정도로 커진 경제·정치적 위상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에 가능하지만 그래도 부러운 것은 사실이다.

'전략적 모호성' 선회 고민할 때

미국과 중국의 치열한 패권 전쟁 사이에서 한국의 외교 지형도는 지금 크게 흔들리고 있다. 신 패권전쟁의 틈바구니에서 과거보다 더 직접적이고 어려운 외교적 선택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과연 지금까지 일관되게 유지해오고 있는 '전략적 모호성'이 무조건 최선이냐는 질문에는 다시 한 번 깊은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다. 줄 것 다 주고 받을 것 못 받고 생색조차 내지 못하게 되지 않느냐는 우려 탓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로 당초 이달 열릴 예정이던 한미 정상회담이 연기됐다. 다행히 미국 측도 이번 연기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한차례 미뤄진 한미 정상회담은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성사돼야 한다. 시간이 다시 주어진 만큼 회담이 분명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철저한 전략과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이제는 모호한 '우방' 관계의 반복 대신 실질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아야 할지 보다 명확하게 선택해야 할 때다.

/정두환 국제부장 dhch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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