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서 유통·가공 위주로 바꿔 中식품시장 공략해야
513%로 5배 오른 쌀 관세율, 사실상 수입 차단 효과
양재 화훼공판장 부지는 매각보다 랜드마크로 활용
"우리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트레이드 관점, 수출과 수입의 관점에서만 바라봅니다. 하지만 우리 농수산업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 연 7~8% 성장하는 거대 경제권이라는 비행기의 날개를 잡더라도 함께 비상(飛上)해야 합니다. 현실이 어렵더라도 한중 FTA를 활용하면 더 큰 도약의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김재수(58·사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사장은 지난 13일 서울 양재동 옛 aT 사옥 집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중 FTA를 한국 농업의 도약대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광활한 시장인 중국을 제대로 공략해 한국 농업의 활로를 찾으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새삼 강조했다. aT 본사는 이달부터 전라남도 나주 혁신도시로 이전했다. 그의 서울 집무실도 이미 대부분의 집기와 서가의 책 등이 비워져 썰렁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가 인터뷰 내내 토로한 한국농업의 비전 등 열정만큼은 뜨거웠다. 김 사장은 aT가 새 둥지에서 적응해야 하듯 국내 농수산업도 바뀐 환경에 맞춰 주도적으로 자신을 바꿔나가야 희망이 있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중국은 연간 7,500억달러에 달하는 거대 식품시장이지만 우리 농수산 가공품은 지난해 전체 중국 식품시장의 1%도 안 되는 14억달러를 수출하는 데 그쳤다"며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중국 식품시장 곳곳에 우리 농수산식품이 침투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한국 농식품은 중국 시장에서 품질과 안정성 면에서 우수함을 인정받고 있다"며 "도시화가 확대되고 있고 중상위 소비층의 증가, 한류 붐 등으로 기회가 열리고 있는 만큼 지리적 인접성과 유사한 식습관을 이용한다면 얼마든지 수출을 확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한류상품으로 우리에게 강점이 있는 김치·젓갈 등 건강 기능성 발효식품을 예로 들었다.
한중 FTA로 국내 농산물 시장이 엄청난 손해를 볼 것이라는 시각도 경계했다. 일각에서는 한중 FTA 체결로 인한 우리 농업 분야 피해 규모가 약 24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는 국내 농수산 시장의 규모가 제한돼 있기 때문에 FTA를 하더라도 피해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사장은 "중국으로부터 들어오는 주요 농산품은 고추와 마늘, 양파 등이지만 국내 채소류 수요량은 한정돼 있다"며 "예를 들어 고추는 국내 수요가 연간 20만톤인데 국내 생산이 10만톤, 추가 수요는 10만톤 정도인데다 농산물은 보관기관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관세가 낮아져도 무한정 중국 농산물이 국내 시장으로 쏟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쌀 관세화에 대한 우려도 과도하다는 판단이다. 김 사장은 "정부의 쌀 관세율 방침이 513%로 현재보다 5배가 넘게 관세를 물리기 때문에 사실상 수입되지 않을 것"이라며 "높은 관세율을 매겨 미리 관세화했다면 매년 늘어났던 의무수입량(MMA)을 줄여 국내 농업에 재투자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개방이 조금 늦은 감이 있다는 지적인 셈이다.
생산 중심의 농업에서 유통과 가공식품 등 위주로 재편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밝혔다.
조직도 연구개발도 예산도 모두 생산 중심으로 움직이다 보니 생산 이후의 유통과 수급, 저장, 식품안전 등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생산과 생산 이후가 8대2인 비효율적인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다른 거대 농업국가보다 우리 농산물의 가격은 보통 두 배, 세 배 비싸기 때문에 싼 농산물을 국내로 들여오는 대신 이를 가공해서 역수출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며 "고춧가루를 들여오면 고추장으로 만들어서 중국 등으로 다시 수출하는 등 국내 가공식품을 다시 되사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국내 농수산식품이 국제적인 수준의 안정성과 품질을 확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복잡한 중국 통관체계 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협력뿐만 아니라 민간업체의 시장 공략이 병행돼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국내 상품으로 돈을 버는 중국인 '빅바이어(Big buyer)'들을 만들고 이들이 중국에 규제완화를 요구하는 전략을 짜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 사장은 "중국은 김치의 대장균 수를 100g당 30마리 이하로 제한하는 등 식품기준이 굉장히 경직돼 있다"며 "전문가들을 앞세워 위생안전 기준과 관련해 국제적으로 설득력 있는 기준을 만들 수 있도록 대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국내 가공식품의 중국 수출을 늘리려면 중국 업체들이 국내 상품으로 현지에서 돈을 벌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중국 업체들이 불합리한 기준을 중국 정부에 직접 해결을 요청하는 것이 효과가 더 빠르고 클 수 있다"고 말했다.
한식의 세계화도 화급한 과제로 꼽았다. 일식이 1964년 일본 도쿄올림픽을 기점으로 '깔끔함'과 '신선함' 등의 특성을 입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처럼 전 세계인이 '한식'을 보면 떠오르는 색깔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국내 농산물의 이미지를 '다이어트 쌀' 등의 기능성 농업에서 더 나가 한식이 보약이 된다는 치료·치유농업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aT는 현재 한식 세계화를 위해 K푸드페어(Food fair)를 지난해부터 중국과 베트남, 미국 등에서 개최하고 있다.
지난해 K-푸드페어가 개최된 5개국으로 수출된 평균 국내 농수산품 수출 증가율은 개최 전년 대비 평균 12.3%를 기록할 만큼 한식의 인지도 향상이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김 사장은 "일식은 그야말로 날 음식이지만 깔끔, 깨끗하고 건강식이라는 이미지로 가치부여를 해 문화적 색을 입혔다"며 "한식을 고급음식으로, 특히 서구인들이 즐기는 음식으로 만들고 이를 통해 국내 농수산식품을 세계로 수출할 수 있는 디딤돌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음식을 문화산업, 더 나아가 식품산업의 선두로 올리려면 식품안전은 기본이고 문화 마인드가 중요하다"며 "색감을 위해 미술 전문가도 참여하고 마케팅을 이용해 한식당 특유의 식공간, 그릇, 식자재 등이 조화된 종합 문화상품으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aT는 11월 중국 칭다오 물류기지를 완공한다. 그렇게 되면 칭다오 물류기지를 중심으로 중국 내륙시장을 개척할 수 있게 된다.
김 사장은 "7,800평 규모의 칭다오 물류기지에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중국 본토에 농수산품을 저장해 현지 시장 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며 "국내 기업들과 현지 중국 기업들의 요구도 많은 만큼 칭다오를 중심으로 중국 다른 지역들에도 정부 차원의 물류기지를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사장은 aT 본사의 전라남도 나주 이전도 단단히 대비해 차질없이 준비해가고 있다고 전했다. aT는 공기업의 혁신도시 이전 계획에 따라 이번달 서울 양재동에 있던 본사를 나주 신사옥으로 옮겼다.
그는 "지역이전을 계기로 지역 인재 할당 채용 등 산학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지자체와 지역 농식품의 수출, 중소기업의 육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주 이전으로 '뜨거운 감자'가 된 강남지역의 노른자위 땅인 서울 양재동 화훼공판장 부지 활용계획도 밝혔다. aT는 공판장을 매각해 수익을 얻기보다는 미래농업센터 등을 지어 농식품 산업의 랜드마크로 만들 예정이다. 화훼공판장은 앞으로 공모 방식으로 1조2,000억원을 민자 유치해 농식품 비즈(BIZ)센터와 판매시설, 전시장 등을 짓고 수익시설은 민간에 30년간 운영권을 줄 계획이다.
다만 농업 관련 시설은 개발 사업 완료 후 aT에 양도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김 사장은 "양재동 화훼공판장에 개선된 첨단 화훼공판장과 미래농업센터, 직거래장터, K푸드 키친, 농식품 비즈센터(Biz-Center) 등을 도입해 도농 교류의 장과 농식품 지원의 거점으로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사장은 우리 농업의 갈 길이 멀지만 언제든 '대박 상품'으로 고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aT 화훼공판장에서 난이 수천만원에 거래되는 것처럼 농업 분야에 숨어 있는 상품을 끊임없이 발굴해야 한다는 의미다. 농업이 식량을 생산하는 것을 넘어 꽃에서 향수를 뽑아내는 것과 같이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끝없이 진화해나가야 국가 기반 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농업은 식량 문제뿐만 아니라 신성장 동력, 고부가가치 상품에 대한 문제"라며 "농업의 기능은 생산에서 먹는 농업으로, 그리고 더 나아가 비료로 가스를 만드는 슈퍼소일시스템(SSS) 같이 완전히 새로운 농업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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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농업' 한우물… 유통·통상분야 이어 경영인으로도 두각 구경우기자 |
/대담=김정곤 경제부 차장 mckids@sed.co.kr
사진=이호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