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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프론티어] 윤호진 에이콤인터내셔날 대표

공대 다닐때 실험극단 입단 1977년 연극 '아일랜드' 만들고<br>뮤지컬 '명성황후' '영웅' 잇단 성공<br>"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인생관<br>돈 문제 난관 뚫고 해외진출 나서 차기작 '몽유도원도' 벌써 관심



한국뮤지컬 역사 다시쓰는 무대위 크리에이터
'명성황후' 이어 '영웅'으로 8월 美 브로드웨이 입성
'오페라의 유령' '맘마미아' 등 초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이 한국 뮤지컬 시장의 파이를 키웠다면 '명성황후'는 '메이드 인 코리아' 뮤지컬의 질적 성장과 자신감을 불어넣어준 작품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한국 뮤지컬 역사에 한획을 그은 명성황후를 탄생시킨 사람이 바로 한국을 대표하는 뮤지컬 연출가 윤호진(63ㆍ사진) 에이콤인터내셔날 대표다. ◇'공돌이'의 변신= 윤 대표의 이력을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홍익대 공대 정밀기계과 졸업. 국내에선 드물게 '공돌이' 출신 연출가가 예술에 발을 담고 있어서다. "세살 때 의사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렵게 가계를 꾸리시던 어머니는 제가 의사가 되길 바라셨지요. 그런데 제 마음은 딴 데 있었던 거예요. 바로 영화였지요. 일주일 두어 번은 동시상영관에서 두 편씩 영화를 보고 돌아갈 정도였으니까요." 영화에 미쳐 살던 고등학교 시절 당시 초등학교 교사였던 누나가 구해준 연극 표는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됐다. 고2 때 명동극장에서 '휘가로의 결혼'을 본 그는 '살아 있는 예술 장르'라는 생각에 온 몸에 전율을 느꼈다. 의사 아들을 바라는 어머니의 뜻을 꺾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부응하지도 못해 의대보다 성적이 낮은 공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공대는 결국 그의 길이 아니었다. 대학 3학년 때 실험극단에 입단하면서 그는 연출가 윤호진의 이름을 꽃피울수 있는 장을 만나게 된다. 1977년 무대에 오른 연극 '아일랜드'는 지금까지 한국 연극사에 오르내리는 걸작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작가 아돌 후가드의 74년작인 '아일랜드'는 두 명의 죄수를 통해 국가의 인종 차별과 인권 문제를 파헤쳤다. "연극 하겠다고 지하 연습실 먼지 구덩이에서 못 먹고 못 자면서 생활하다 보니 폐결핵에 걸렸습니다. 1년을 지독하게 앓은 다음 살아남으니까 남은 삶을 보너스로 얻었다는 생각에 더욱 치열하게 살아지더군요. 다시 살아난 목숨으로 만들어낸 게 '아일랜드'예요. 유신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이라 검열을 통과하지 못할 거라고 걱정했는데 다행히 무대에 올렸습니다. " 실험극단은 어느 정도 흥행을 거두며 자립 기반을 마련했지만 다른 극단의 사정은 그렇지 못했다. 연극계가 힘을 합쳐 공생의 길을 모색하자며 소극장 운동에 앞장 섰지만 그마저 현실의 벽에 부딪혀 공연의 자립성에 대해 고민할 즈음 그에게 새로운 길이 열렸다. ◇뮤지컬 '캣츠'의 전율을 '명성황후'로 승화=문예진흥원이 예술인에게 지원하는 해외 연수 기회를 얻게 된 윤 대표는 1982년 홀연히 영국으로 떠났다. 영국 연수 동안 본 뮤지컬 '캣츠'는 그의 인생을 또 한번 바꿔놓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입이 쩍 벌어지고 눈이 휘둥그래졌지요. 사람의 힘으로 이런 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있다는 데 놀라움이 앞섰지요. 정신을 차리고 나니 저거야말로 우리가 자립할 수 있는 예술 장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런던 연수를 마치고 미국 뉴욕대에서 공연학을 전공한 윤 대표는 돌아와 에이콤인터내셔날을 설립했다. 실험극단에 있을 때 서울대 공대 출신 연극반 활동을 도와준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이 에이콤 후원회 겸 주주로 참여했다. 현재는 김중겸 현대건설 사장, 손동창 퍼시스 회장, 원명수 메리츠금융그룹 부회장 등이 에이콤을 물심양면 후원하고 있다. '캣츠'의 전율로 '나도 세계적인 작품을 만들겠다'는 오기를 품었던 윤 대표는 첫 도전작으로 '명성황후'를 택했다. "명성황후가 민비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굳어져 있는 상황에서 이를 소재로 역사적 관점에서 접근하자고 제안했지요.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이문열의 소설 '여우사냥'입니다." 뮤지컬의 핵심 요소가 음악인 만큼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뮤지컬 넘버를 제작해야겠다고 판단한 윤 대표는 해외로 눈을 돌렸다. '레미제라블'과 '미스 사이공'을 작곡한 당대 최고의 뮤지컬 작곡가 클로드 미셸 쇤버그가 그의 눈을 잡아끌었다. 쇤버그를 파리의 한 카페에서 만났고 삼고초려 끝에 참여 의사를 받아냈다. 그런데 문제는 돈이었다. 예술의전당 공연 예산을 받지 못하게 되고 찾아간 대기업 투자자들은 '내용이 무겁다'며 외면했다. 결국 쇤버그를 포기하고 국내파로 눈을 돌려 김희갑과 양인자 부부의 작곡과 작사, 극작가 김광림 각색, 박칼린 음악감독으로 크리에이티브팀을 꾸렸다. 1991년부터 기획에 들어가 시해 100주기인 1995년 10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을 빌렸다. 돈 문제로 일이 꼬였다가 어렵사리 그해 12월 30일 무대에 올렸다. 관객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초연에서 대성공을 거둔 그는 미국 브로드웨이에서도 승산이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해외 공연은 엄청난 도전이었어요. 공연이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고 비용도 문제였지요. 1997년 8월 15일을 개막일로 정해놓고 독립운동 하는 심정으로 배우들 앞에서 '뗏목을 타고서라도 브로드웨이에 가겠다'고 선언했지요. " 배우들은 '노(No) 개런티'까지 감내하면서 협력했지만 또 돈 문제라는 난관에 봉착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에이콤 운영위원회 소속의 한 기업 대표가 뉴욕공연추진위원장을 맡아 십시일반 돈을 모아줬다. 뉴욕 공연은 대성공을 거뒀다. 뉴욕타임스 등 주요 매체의 리뷰에서 호평이 쏟아졌고 관객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우연히 만난 안중근 의사=2009년 안중근 의사 서거 100주기에 맞춰 무대에 올린 창작 뮤지컬 '영웅'은 우연한 기회로 만들어졌다. 몇 년전 안중근기념사업회에서 일하는 한 젊은이와의 만남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7년 전쯤 안중근기념사업회에서 문화팀장으로 일한다는 젊은 청년이 찾아와 안중근 의사 서거 100주기에 맞춰 뮤지컬로 만들어보라고 제안하더군요. 처음엔 거절했지요. 너무 역사적 인물 위주로 가는 게 부담스러웠거든요. 내가 왜 안중근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지 이유를 말해보라고 했더니 1주일 후에 다시 찾아와 장황하게 설명했는데 그 중 하나가 귀에 꽂히더군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첫 번째 이유가 명성황후 시해라는 거예요. 명성황후의 후속이 될 만한 충분조건이 마련된 셈이지요. 게다가 하얼빈에서 총 쏘는 장면을 잘 만들면 '미스 사이공'의 헬기 장면 같은 명 장면이 나오겠다 기대가 됐어요." 윤 대표는 극작을 의뢰하기 위해 이문열 작가부터 찾았으나 당시 이 작가는 미국 연수중이라 새로운 사람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찾아낸 작가 한아름 씨가 2년간 꼬박 대본 작업에 매달렸고 음악은 영국인 작곡가에게 의뢰했는데 가슴에 울림이 없었다. 우연히 소개받은 오상준 작곡가에게 "곡을 만들고 네 가슴이 뜨거워지거든 찾아오라"고 했더니 훌륭한 곡을 써왔다. 5년여에 작업 끝에 태어난 뮤지컬 '영웅'은 지난해 '더뮤지컬어워즈'와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연출ㆍ최우수작품 등 6관왕의 영예를 안았으며 오는 8월엔 3주동안 뉴욕 링컨센터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차기작은 최인호의 '몽유도원도'=두 편의 대작이 성공하면서 뮤지컬계의 거두(巨頭)가 된 윤 대표의 차기작은 벌써부터 관심거리다. 그는 주저 없이 최인호 원작의 '몽유도원도'를 꼽는다. "지난 2002년 초연 무대에 올렸지만 명성황후에 밀려 그다지 공을 들이지 못했어요. 이번엔 배삼식 작가가 극본을, 재일교포 작곡가인 양방언 씨가 작곡을 맡아 제대로 해볼 겁니다. 고대가 배경인 만큼 최첨단 기술을 활용해 판타지적 요소를 강화하면서도 여백의 미를 강조해 한 폭의 동양화를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줄 작정입니다. 윤 대표는 흥행작에 공통된 성공 비결이 있다고 말한다. 내용이 강렬한 인상을 줘야 하고 어느 계층,어느 국적을 막론하고 공감할수 있는 보편적 코드가 있어야 하며 어떤 시기에 작품을 올리느냐 하는 타이밍(시의성) 이 3박자가 잘 어우러져야 한다는 것. 그러고 보니 명성황후나 영웅 모두 100주기에 시점을 맞춘 덕을 톡톡히 봤다. 그는 누구보다 한국 뮤지컬의 미래에 낙관적인 전망을 갖고 있다. "최근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소재가 고갈돼 기존의 히트작들을 다시 올리거나 흥행 영화를 뮤지컬화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반면 한국 뮤지컬은 자본이 부족하고 시장이 작은 대신 창작열과 실력 면에서는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글로벌 시대일수록 자기 것에 대한 강렬한 메시지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것을 잘 녹여내 서양 관객들도 감동 받을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낸다면 얼마든지 승산이 있습니다."
박진감 넘치는 '기차 장면' 압권 명성황후 후속 국민뮤지컬 기대
■ 美 무대 올리는 '영웅'은 어떤 작품 '명성황후'는 역사성과 작품성, 흥행성까지 인정 받으며 '국민 뮤지컬'이란 타이틀을 얻었다. 그리고 그 '명성황후'가 낳은 옥동자가 바로 '영웅'이다. 총 37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영웅'은 어둠 속에서 점점 커지는 기차 소리, 일곱 발의 총성이 북두칠성이 돼 검은 스크린에 번지는 총탄 자국으로 시작한다. 일본 제국주의가 한반도를 넘어 중국과 러시아 벌판에까지 번져가던 1909년. 대한독립군의 안중근을 비롯한 소수 요원들은 단지(斷指) 동맹을 결의하면서 조국을 위기에서 구하고자 한다. 역사적 인물을 다루지만 극 전체를 관통하는 역사관이 인류의 공감대를 파고든다. 항일 의식이 강한 중국인을 겨냥해 안중근을 도운 링링이란 인물이 후원자였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일본인 입장에서는 이토 히로부미가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근거와 인간적인 면모를 넣어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는 코드를 마련했다. 작품의 압권은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헬기 장면'에 견줄만한 '기차 장면'이다. 실제 기차 세트 앞에 투명 가림막을 내리고 그 위에 휘날리는 눈발과 자작나무가 뒤로 물러가는 영상을 접목해 실제로 열차가 달리는 듯한 효과를 냈다. 시시각각 바뀌는 무대는 관객을 하얼빈으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등으로 데려다 놓는다. 완성도 높은 무대는 반복되는 장면 전환에 일관성을 부여하며 관객을 극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8월 '영웅'은 해외 첫 무대로 뉴욕 링컨센터에 오른다. 지난 97년 '명성황후' 이후 꼭 14년 만이다. 공연 수익을 묻자 윤 대표는 담담하게 적자를 얘기했다. "총 250만 달러의 제작비가 소요되는데 이 중 100만 달러는 티켓 수입으로 충당할 수 있지만 150만 달러 적자는 불가피해요. 100만 달러는 에이콤 후원회 등 기업 지원으로 충당하고 나머지 50만 달러는 적자로 남겠죠. 그래도 걱정 안 합니다. 돌아와서 다시 벌면 되지 않겠어요?" '영웅'의 브로드웨이 도전은 계속된다. 8월 미국 공연에서 현지 분위기를 가늠한 후 내년 1월엔 영어 버전으로 다시 뉴욕 무대에 올릴 계획이다. 영어 버전의 무대가 인정받으면 내년 6월 토니상에 노미네이트될 가능성도 있다. "진정한 성공은 우리 손으로 만든 창작 뮤지컬을 라이선스를 받고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리는 것입니다. 뮤지컬의 중심은 이제 서양이 아닙니다. 중심축은 언제든지 이동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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