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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청산자 사업비 분담에 발목 잡힌 재개발

분양 대신 돈 요구 조합원 늘자… 사업비 물리려 정관개정 잇달아

당사자 반발 속 구청 승인 지연

이주 늦어져 금융비용도 눈덩이… "정부·지자체서 기준 제시해야"

서울시내에서 재개발 사업을 추진 중인 A구역은 사실상 사업의 마지막 단계인 관리처분계획인가를 앞두고 몇 달이나 시간을 끌어야 했다. 아파트 분양 대신 현금청산을 원하는 조합원에게 '사업비'를 분담시키기 위한 정관 개정은 지난해 9월 이뤄졌지만 이 변경안에 대해 해당 구청 승인은 지난달 초에야 났기 때문이다. 주민 이주도 그만큼 지연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수억원의 이자 비용이 발생했다.

현금청산을 원하는 조합원들에 대한 사업비 분담 문제 때문에 사업 지연이나 갈등을 겪는 재개발 구역들이 늘고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재개발 사업의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아파트 분양 대신 지분 가치만큼 돈으로 받으려는 현금청산 조합원들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조합 측으로서는 이들 현금청산 조합원도 사업비의 일부를 내도록 해 부담을 줄이려고 하지만 당사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은데다 현금청산 조합원의 사업비 부담 범위에 대한 구체적 기준도 마련되지 않아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3일 일선 재개발조합 등에 따르면 최근 현금청산 조합원에게 그간의 사업 비용을 분담시키는 방향으로 정관을 변경하는 조합이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영등포구의 B조합은 현금청산 요구 조합원들이 크게 늘면서 사업비 일부를 이들에게 분담시키는 내용의 정관 변경안을 지난 2012년 말 총회에서 의결했고1년 만인 2013년 말 구청 승인을 받았다. 동작구의 C조합 역시 3월 중순 총회에서 같은 이유로 정관을 변경한 후 현재 구청 승인 절차를 진행 중이다.

◇현금청산 늘면서 사업비 부담 놓고 곳곳서 잡음=조합이 현금청산 조합원들에게 사업비를 분담시키려는 것은 남은 조합원들의 추가 분담금 규모를 줄이는 한편 가능한 한 조합원 이탈을 막겠다는 의도다.

최근 정관을 변경한 서울의 한 재개발 조합장은 "현금청산자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겠다는 것이라기보다는 웬만하면 같이 가자는 의도"라며 "청산자 대량 발생을 방지하는 일종의 안전장치"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정관 변경 자체는 만만치 않다. 사업비 자체가 일반 사업추진비 외에 이주비대출이자·이사비·금융이자 등 워낙 복잡하고 다양한 항목들로 구성돼 있다 보니 현금청산 조합원들에게 어느 범위까지 부담을 지워야 할지를 놓고 논란이 많기 때문이다. 조합 내부는 물론이고 정관변경 승인권자인 일선 시·군·구청에 따라서도 의견이 모두 다른 상태다.



이렇다 보니 정관 변경 절차만으로 짧게는 2~3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 가까이 시간을 허비하는 재개발 구역도 많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그만큼 주민 이주 절차가 지연될 수밖에 없어 이주비·이사비 등에 대한 금융이자가 수억원씩 발생하기도 한다.

오병천 전국재개발재건축연합회 회장은 "현재는 개별 조합 사정에 따라 달리 분담 비용의 범위를 정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규정이 제각각이다 보니 이를 둘러싼 조합 내부 갈등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정부·지자체 차원서 기준 제시 필요해=정부나 일선 지자체 역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현재 재개발 사업 정관의 기준이 되는 표준정관에는 분양신청을 했던 현금청산자에게 어떤 비용까지 분담시킬지에 대한 항목은 물론이고 분담시킬 수 있다는 근거 항목도 없는 상태다.

진희선 서울시 주거재생정책관은 "서울시에서 일관되게 권유하는 방식은 없다"며 "어떤 비용을 제하고 청산해줄지는 각 조합과 구청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의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표준정관(이하 표준정관)에서 현금청산자에 대한 사업비 공제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함께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근거법인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령에 관련 조항을 명문화해달라는 요구도 나오고 있다. 정비업계의 한 관계자는 "상위법에서 기준을 제시해줘야 재개발 현장에서 빚어지는 혼란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국토부는 "현금청산자의 사업비 부과 항목을 추가하기 위해 표준정관을 변경할 계획은 없다"며 "개별 사업별 계약 문제를 법령으로 규정하는 것도 과도한 개입"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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