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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오늘의 경제소사-8월13일 베를린장벽 동서 가르다









오늘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서 냉전의 상징물로 존재했던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날입니다.

지금으로부터 54년 전,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에 의해 분할 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세계대전 이후 소련은 동베를린, 미국과 영국 그리고 프랑스는 서베를린을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949년 동독에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동독 주민들이 서독 지역으로 넘어가는 이른바 ‘서독으로의 러시’가 시작되는데요. 1949년 20만 명으로 시작되어,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는 1961년까지 총 250만 명이 서독 지역으로 이주했습니다.

이에 동독 정부와 소련도 위기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공산당 서기관이었던 흐루시초프는 “베를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무력사용도 불사하겠다”고 말하며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탄생한 것이 ‘베를린 장벽’입니다. 동독 정부가 내세운 표면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파시즘의 방파제’ 역할이었습니다. 베를린에 장벽을 만들고 파시즘의 발생을 미리 막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실상은 국민들의 탈출을 막으려는 ‘궁여지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1961년 아침, 베를린 시민들은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바로 동·서 베를린 사이의 13개의 주요 도로와 80여 개의 거리에 철조망이 설치된 겁니다. 당시 베를린 장벽은 45㎞의 철조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점점 콘크리트와 벽돌로 도시 곳곳을 가르게 되면서 높이 2m 폭 2m 총 길이 150㎞의 거대한 장벽이 완성됐습니다. 장벽이 세워진 후, 이 장벽을 넘다가 1,000명 이상의 사람이 죽었을 정도로 독일인들에게 많은 상처를 안겨줬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후, 동독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서독과의 교류로 유지되던 경제가 악화일로를 겪게 되는데요. 이는 1989년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계속됩니다.

분단국가인 우리의 현실도 당시의 베를린과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올해는 광복 7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입니다. 사실상 분단 70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분단의 시간이 지속될수록 남과 북을 가르는 ‘보이지 않는 베를린 장벽’은 점점 더 높아져 가고 있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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