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된 3월 경기동향지표를 보면 산업생산, 소매판매, 설비투자와 건설기성 모두 전월보다 감소하고 있다. 경기부양대책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금리를 추가적으로 인하해야 할지 혹은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재정을 확대해야 할지가 논란이 되고 있다.
금리인하와 확대재정정책의 선택에 관한 논란은 최근 미국에서도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지낸 벤 버냉키는 금리 인하를 통해 경기를 부양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재무장관과 하버드대 총장을 역임한 래리 서머스는 재정정책이 유효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많은 전문가는 금리를 추가적으로 인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먼저 미국·일본, 그리고 유로존 등 선진국들이 실시하고 있는 것과 같이 금리를 인하할 경우 실질금리가 낮아져 저축이 감소하면서 소비가 늘어나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자본이 유출되면서 환율이 높아져 수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시킬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같이 추가적인 금리 인하를 선택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선진국과 여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먼저 가계부채 문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선진국과 달리 우리 가계부채는 경기침체로 실업이 늘어나면서 높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금리가 추가적으로 인하될 경우 가계부채가 더 늘어날 수 있으며 이는 결국 소비를 제약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지금 소비가 늘어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실업 때문이다. 청년실업과 조기퇴직으로 일자리가 없어지면서 소득이 감소해 소비할 수 있는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앞으로 우리 경제의 저성장국면이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로 소비자들은 미래를 염려해 지갑을 닫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추가적으로 금리를 인하하더라도 소비는 늘리지 못하고 부동산과 주식가격 버블만 만드는 등 부작용을 크게 할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차이점은 우리나라 원화는 국제통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유로존의 통화는 모두 국제외환시장에서 거래되는 국제통화여서 국내 통화정책이 곧 환율정책이 된다. 돈을 풀면 통화가치가 떨어지고 환율은 높아져 수출을 늘릴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선진국은 채권시장의 규모가 커서 금리를 낮출 경우 채권시장을 통해 자본이 유출되면서 환율은 높아지게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와 반대다. 원화가 국제통화가 아니기 때문에 추가적인 금리 인하를 해도 선진국과 같이 환율이 크게 높아지지 않으며 수출 또한 늘어나기 어렵다. 선진국과 달리 주식시장의 규모가 채권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고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비중이 채권시장에 비해 월등히 높다.
금리를 인하할 경우 유동성 장세로 주가가 높아지면서 주식시장을 통해 자본이 유입되면서 환율은 오히려 하락하게 된다. 이는 최근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했음에도 불구하고 환율은 떨어지고 있으며 수출도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것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는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추가적으로 인하하는 것보다는 재정을 확대하는 정책을 사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또한 환율전쟁에 좀더 적극적으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 국제통화를 가지고 있는 선진국은 다른 나라가 간섭할 수 없는 통화정책으로 환율을 높여 경기를 부양시킬 수 있는 반면 신흥시장국은 국제통화기금(IMF)이 금지하고 있는 외환시장개입을 통해서만이 환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환율전쟁은 선진국이 승자가 되면서 신흥시장국은 패할 수밖에 없는 전쟁이며 국부는 신흥시장국에서 선진국으로 이전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이에 대응하는 정책결정자의 혜안이 필요한 시기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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