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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무기화' 현실화땐 세계경제 치명타

美 '대륙봉쇄' 카드에 러 "가스 파이프 차단" 맞서<br>갈등 길어지면 한국등 이머징마켓 불신 확산 우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측과 러시아 간의 그루지야 사태를 둘러싼 갈등이 ‘신냉전’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세계경제에 짙은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국제 상품시장의 안정기조가 일시에 흔들리는가 하면 러시아는 외국인 투자자금의 급격한 이탈로 증시 폭락, 루블화 가치 하락 등 심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러시아 경제의 동요는 한국을 비롯한 이머징마켓 전체에 대한 투자자의 불신으로 확산될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의 철군 약속을 이행하라며 경제 제재를 비롯한 ‘대륙봉쇄’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으며, 이에 러시아는 유럽으로 향하는 에너지 파이프를 차단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이 같은 신냉전 기류는 군비경쟁을 불러와 약달러와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로서는 과거 같은 냉전체제로의 회귀 가능성은 낮지만 양측 간의 갈등 장기화만으로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발 신용위기로 살얼음판을 걷는 글로벌시장과 침체국면에 접어든 세계경제에 치명타를 입힐 것으로 예상된다. 그루지야 사태는 이달 초까지 세계경제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국제유가는 양측 간의 긴장 고조에도 불구하고 속락했으며 달러 가치도 7년 만에 약세를 벗어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될 정도로 상승기조를 이어갔다. 그러나 동서 간 갈등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국제유가는 급상승세로 방향을 바꿨다. 러시아가 그루자야 철군을 약속했음에도 주요 전략요충지역에 진지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지자 미국은 지난 20일 폴란드와 미사일방어(MD)체제에 합의, 러시아를 자극했다. 앞마당이 위협받게 된 러시아는 이에 군비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시리아에 미사일 배치계획을 마련하는 등 맞불 대응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당장의 위협은 그루지야의 주요 석유수출항을 봉쇄하고 유럽에 대한 천연가스 차단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2위 석유생산국인 러시아는 유럽 원유 소비량의 4분의1, 천연가스 소비량의 절반을 공급하고 있다. 국제유가 수급 불안이 완전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같은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경우 가격 폭등은 피할 길이 없다. 국제유가 상승은 달러 가치와 글로벌 증시 하락으로 연결된다. 미국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 보복의 일환으로 러시아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거부하고 선진8개국(G8)에서 러시아를 탈퇴시키겠다는 의사를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그루지야 사태 이후 러시아에서 외국인 투자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은 서방 측의 대러시아 압박용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앞서 19일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 26개국 외무장관들은 “러시아군이 그루지야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비즈니스는 지속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외국인투자가들이 8일 그루지야 사태가 발발한 후 1주일간 164억달러를 빼내가자 러시아 중앙은행은 루블화 방어에 초비상이 걸렸다. 대량의 실탄을 시장에 투입, 간신히 루블화 하락을 저지하고 있으나 금융시장의 경고음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있다. 러시아 증시의 RTS지수는 7일 이후 6.5% 빠졌고 외국인 자금 이탈로 인한 신용경색으로 러시아 재벌들마저 돈가뭄에 허덕이고 있는 것. 또 서방 투자자들이 빠져나가면서 러시아 국채 가격이 폭락하고 수익률이 급등하고 있다. 1998년 골드만삭스를 위시한 미국 투자자들의 러시아 국채 매입 포기로 모라토리엄(대외지불유예)를 선언한 후 서방 투자자들이 빠져나가기는 10년 만에 처음이다. 급기야 러시아 재계 인사들이 공개적으로 정치권을 향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으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다음달 재계 총수들과 회동, 신용위기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그루지야 사태는 국제유가 상승 덕에 구소련 전성기 때만한 힘을 기른 러시아가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도전하는 데서 촉발됐지만 이 같은 신냉전 기류가 세계경제의 또 다른 위협요인으로 다가오고 있다. /뉴욕=권구찬특파원 chans@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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