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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칼럼/11월17일] 지금은 그때와 무엇이 다른가

지난 1997년 동남아 지역에서 통화위기가 발생하자 우리는 한국경제가 태국이나 인도네시아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 경제가 그들이 당했던 금융위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들과 무엇인가 달라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강박관념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쓸데없는 일에 몰두하는 동안 동남아의 금융위기가 우리나라까지 번져오는 데 별로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보통신기술이 발달되고 각국의 금융시장이 개방되고 통합됐기 때문에 위기의 확산도 신속했다. 구태여 우리 경제가 그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우리가 당시에 그들보다 금융시장이 덜 개방됐고 경제성장ㆍ물가ㆍ경상수지 등 ‘기초경제여건(economic fundamentals)’이 그들보다 건실했던 것 정도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외환ㆍ금융위기를 방지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했다. 대외적으로 우리 경제의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경상수지가 악화됐고 대내적으로는 대기업의 잇따른 부도사태와 금융기관들의 동반부실화 등 금융위기의 조건이 성숙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정부가 환율안정을 위해 외환시장 개입을 확대하는 바람에 원화가 고평가돼 공연히 외환보유액만 대폭 줄어들었다. 금융위기의 발생원인은 기초경제여건에 못지않게 금융산업의 건전성 및 정부정책의 신뢰 등에 따르는 금융시장의 유동성 문제라고 하겠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금융위기를 당했던 여러 나라들과 다른 점이 금융위기를 방지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 같다. 한국은 외환위기를 겪은 지 이제 11년이 된다. 우리는 그동안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경제체질도 많이 개선했다. 그러나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그 피해가 전세계로 널리 퍼지면서 한국이 또다시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는 이야기가 국제 금융시장에 떠돈다. 외신들과 일부 경제 전문 기관들은 아시아 지역에서 한국이 금융위기가 재발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본다. 현재 한국의 문제는 은행의 과도한 해외차입과 기업들의 과잉 헤지 때문에 발생했다. 지난 몇 년 동안 국내 은행들은 소위 ‘엔캐리 트레이드’로 막대한 단기자본을 국내로 도입해서 이들을 건설 부문, 가계 주택 부문 등에 대규모로 빌려줬다. 최근에 단기외채가 급증한 것도 이러한 요인 때문이다. 그러나 주택 및 건설 부문이 침체하고 게다가 국제 금융시장에서 유동성 경색이 자금조달을 매우 어렵게 하면서 위기를 맞게 됐다. 한국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 때와는 크게 다르다. 당시에는 금융 부문이 충분한 위험관리 없이 단기외채를 빌려 빚이 많은 기업에 빌려줬다. 이런 취약점으로 한국경제는 대외 쇼크에 노출됐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한국 기업들은 부채를 크게 줄였고 기업지배구조도 개선했다. 은행 부문의 자산 건전성도 개선됐다. 외환보유액은 당시의 7배에 달하며 환율정책도 유연하다. 또한 원화약세로 이득을 볼 수 있는 다양한 산업 및 수출기반을 갖고 있어서 당시와는 다르다.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한 아이슬란드ㆍ헝가리ㆍ우크라이나 등과는 다르다. 정책당국 및 일부 전문가들의 이 같은 주장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위기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도 환율이 급등했으며 주가는 폭락했다. 정부개입으로 외환보유액도 줄어들고 있다. 한국의 국가신용도를 나타내는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 프리미엄도 크게 높아졌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인 피치는 한국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하고 있다. 우리 경제는 유동성 경색뿐 아니라 미국ㆍ유럽ㆍ일본 등의 동반 경기침체에 따르는 위험요인도 안고 있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는 글로벌 경기침체에 크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다시 금융위기에 직면, 그때와 지금은 다르고 그들과 우리는 다르다는 것만 강조하는 것으로는 위기를 극복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 그때와 지금이 다르다는 것보다는 위기는 재발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보다 위기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 금융감독 당국은 은행의 해외차입을 철저히 관리하고 과도한 자산증가를 경계해야 한다. 또한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는 개별 국가 차원의 대책만으로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적극적인 국제 정책공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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