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불사라는 말이 있다. 원래는 바둑격언이었는데 지금은 경제용어로도 곧잘 쓰인다. 몸집이 비대해지면 건강면에서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 생물학적, 의료학적 견해지만 바둑의 경우에는 꼭 그렇지가 않다. 바둑의 대마는 안형 두 개만 확보하면 산다. 대마는 도처에 안형을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이 있으므로 잘 죽지 않는 것이다. 프로기사는 웬만해서는 대마를 잡으려 하지 않는다. 대마를 잡으려고 덤볐다가 문전옥답 다 짓밟히고 낭패를 본 경험이 모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르다. 흑이 우변의 백대마를 잡지 않으면 바둑을 패하게 된 마당이다. 윤준상은 흑57로 잡으러 갔다. 검토실의 김승준이 예측했던 방식은 아니었지만 이 수 역시 강력한 공격수였다. "잡힌 것 같은데요."(김승준9단) 서봉수9단은 지도다면기를 끝내고 검토실에 들어와 있었다. "그렇지. 잡혀야지. 완전한 철벽 아닌가. 흐흐흐."(서봉수) 윤준상이 이긴다는 쪽에 현찰 만원을 걸어놓은 서봉수는 지금 신이 나있다. "역시 서명인님 돈은 만져보기가 어렵군요."(김승준) 흑63으로 안형의 급소에 쳐들어갔다. 이것으로 99퍼센트 절명으로 보인다. 하지만 옆에 와있던 김성룡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더 확실한 길이 있었던 것 같아."(김성룡) 김성룡이 만들어보인 그림은 참고도의 흑1에 가만히 뛰는 것이었다. 백2면 흑3 이하 7로 좁혀들어가서 그만이다. 이세돌은 백66으로 일단 포위망의 한 모서리를 뚫고나왔다. 윤준상은 흑67에서 73까지로 자기 진영을 깨끗하게 정비했다. 흑73을 보고 서봉수는 김승준에게 손을 내밀었다. 김승준은 만원을 꺼내 서봉수에게 주었다. 백대마가 죽었다고 인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바둑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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